우회전 사고, 경찰은 '단순 범칙금'...대법원은 '명백한 범죄'
우회전 사고, 경찰은 '단순 범칙금'...대법원은 '명백한 범죄'
'차량 대 차량 사고'라는 경찰 설명, 정말 법적으로 타당한가

청신호에 직진하던 이륜차를 우회전 차량이 들이받았는데, 경찰은 '보행자가 아닌 차량 간의 사고라 12대 중과실이 아니다'라며 범칙금 처리를 예고했다. / AI 생성 이미지
청신호에 직진하던 이륜차를 우회전 차량이 들이받았다. 경찰은 '보행자가 아닌 차량 간의 사고라 12대 중과실이 아니다'라며 범칙금 처리를 예고했다.
억울한 운전자의 호소에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지만, 대법원 판례는 경찰의 초기 판단이 법리를 오해한 것일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회전 사고에 숨겨진 법적 진실을 파헤쳐 본다.
'차량끼리라 중과실 아냐'…경찰 판단, 과연 타당한가
직진 신호를 받고 주행하던 이륜차 운전자 A씨는 우회전하던 사륜차에 옆구리를 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경찰서에서는 A씨가 피해자임은 인정했지만, 의외의 설명을 내놨다.
'차량 대 차량 사고'이므로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은 적용되지 않아 단순 범칙금과 벌점으로 종결될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경찰의 판단에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수긍하는 입장을 보였다. 법무법인 중산의 김영오 변호사는 "경찰관의 설명대로 차량 대 차량(이륜차 포함) 사고이기 때문에 가해 차량에게 '12대 중과실'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최성현 변호사 역시 "말씀하신 대로 12대 중과실 중 보도침범 및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조항은 원칙적으로 보행자 또는 자전거 등이 피해자인 경우에 적용되는 규정입니다"라며 차대차 사고에서는 해당 조항의 직접 적용이 어렵다고 봤다.
법무법인 율우 신현범 변호사도 "교통사고 사건은 경찰서에서 많이 처리하기 때문에, 경험상 교통사고 사건 처리가 이상한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라며 경찰 판단을 존중하는 의견을 냈다.
'보행자 보호' 아닌 '신호위반'이 쟁점…관점 다른 반론들
하지만 경찰의 설명이 사건의 핵심을 놓쳤다는 날카로운 반론도 제기됐다. 사고의 쟁점은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 아니라 '신호 위반'이라는 것이다.
제이디종합법률사무소의 전종득 변호사는 "정리하면, '차량대 차량이라서 12대 중과실이 아니다'는 취지는 맞지 않고, 상대방의 차량신호(적색 여부) 확정이 12대 중과실 판단의 분기점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피해자가 누구냐가 아니라 가해 차량이 '적색 신호'를 위반했는지가 중과실 판단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윤준기 변호사 역시 "경찰의 초기 판단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이의를 제기하실 수 있고, 이 부분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적극적으로 다투시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며 경찰의 초기 판단이 최종 결론이 아님을 강조했다.
대법원의 일침, "보행자 없어도 그 자체로 신호위반 범죄"
이 논란에 대해 대법원은 이미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법적 분석에 따르면, A씨의 사고는 12대 중과실 중 '신호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법원은 판결(2009도8222)을 통해 "교차로의 차량신호등이 적색이고 교차로에 연접한 횡단보도 보행등이 녹색인 경우에, 차량 운전자가 위 횡단보도 앞에서 정지하지 아니하고 횡단보도를 지나 우회전하던 중 업무상과실치상의 결과가 발생하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1항, 제2항 단서 제1호의 신호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A씨의 직진 신호가 녹색일 때 상대방 쪽 횡단보도 신호 역시 녹색이었다면, 우회전 차량은 '차량 적색 신호'에 정지해야 할 의무를 어기고 진행한 셈이다.
이는 피해자가 보행자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신호 위반'이라는 중대한 법규 위반 행위가 된다. 결국 경찰의 '단순 범칙금' 설명은 이러한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간과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형사는 '증거 싸움', 민사는 '별개'…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렇다면 A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형사책임과 배상을 분리해서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을 조언한다.
법무법인 약속의 조범수 변호사는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 신호주기, 횡단보도에 실제 보행자가 있었는지, 충돌 위치 등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며 명확한 증거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디센트 법률사무소 홍푸른 변호사는 형사와 민사는 별개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상대의 명백한 신호 위반이 입증되지 않는 한, 형사상 중과실로는 다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형사처벌 가능 여부의 문제이고, 민사상 과실비율과 손해배상은 별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설령 12대 중과실로 형사처벌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가해자의 명백한 과실을 근거로 민사상 손해배상(치료비, 위자료 등)은 적극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억울한 사고를 당했다면 경찰의 초기 판단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블랙박스 등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고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