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인파 뚫고 횡단하다 식물인간 된 70대... 법원 "주최측이 3.5억 배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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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인파 뚫고 횡단하다 식물인간 된 70대... 법원 "주최측이 3.5억 배상하라"

2026. 04. 21 17:23 작성2026. 04. 21 17: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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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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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5천 명 운집한 마라톤 대회서 발생한 충돌 사고

안전요원 1명 배치 등 통제 소홀했던 주최측에 철퇴

보행자 무단횡단 과실도 30% 인정

마라톤 도중 횡단보도로 진입한 보행자가 참가자와 충돌해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렀고, 법원은 주최측에 3억5천여만원 배상을 명령했다. /셔터스톡

2023년 11월 5일, 서울 상암월드컵공원에서 여의도공원을 거쳐 잠실주경기장까지 이어지는 도로에는 총 3만 5,000명의 인파가 몰려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축제의 장이 되어야 했을 마라톤 대회는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되었다.


사고는 대회가 한창이던 아침 8시 59분경, 마라톤 코스에 포함된 서울 여의도공원 8번 출입구 앞 횡단보도에서 발생했다.


당시 77세였던 여성 A씨는 횡단보도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가로지르기 위해 참가자들 사이를 뚫고 무리하게 진입했다. 그 순간, 해당 구간을 달리고 있던 마라톤 참가자 B씨와 강하게 충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 사고로 A씨는 외상성 경막하 출혈이라는 중상을 입었고 응급 감압 두개절제술까지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눕게 되었다.



"스마트워치 보느라 전방 주시 태만" vs "갑자기 튀어나온 보행자 어찌 피하나"


A씨 측은 대회를 주최한 C 주식회사와 운영관리를 위탁받은 주식회사 D, 그리고 충돌한 참가자 B씨 모두에게 약 4억 6,552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씨 측은 특히 참가자 B씨를 향해 "전방에 횡단보도가 있음에도 스마트워치를 보느라 전방주시의무를 소홀히 해 보행자를 치었다"며 공동 배상 책임을 주장했다.


실제로 사고 당시 촬영된 영상에 따르면, 사고 직전 B씨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느라 전방을 제대로 보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방법원 김재향 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마라톤 대회의 특수성을 조명하며 러너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다수의 참가자가 군집을 이루어 달리기를 하게 되는 대회 특성상, 대회 참가자들로서는 보행자들의 통행이 주최측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관리되고 있을 것이라 신뢰하면 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참가자 사이를 뚫고 마라톤 구간을 통행하는 보행자가 있을 것을 예측하며 경기를 진행해야 할 주의의무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참가자에게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다수의 무리에 섞여 달리던 B씨가 전방을 주시했다 하더라도, 참가자들의 동태나 속도를 살피지 않고 빠르게 속도를 높여 횡단보도를 통과하던 A씨와의 충돌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법원은 B씨에게 사고에 대한 예견가능성이나 회피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그에 대한 청구를 기각했다.


통제 구멍 난 주최측의 무거운 책임... "보행자 역시 안전 도모할 의무 있어"


반면, 3만 5,000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행사를 주관한 피고 C 주식회사와 피고 주식회사 D를 향해서는 매서운 질타가 쏟아졌다.


법원은 "보행자와 참가자의 안전이 충분히 확보된 상황에서 안전요원의 철저한 통제하에 보행자가 통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설을 갖추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고 당일 횡단보도에는 차량 통행만 금지되었을 뿐, 보행자들의 우회를 유도하는 안내는 전혀 없었다.


더욱이 횡단보도 중간과 우측에 안전요원 1명과 경찰 1명만이 배치되어 있어 밀려드는 보행자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원고가 참가자들을 뚫고 횡단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안전요원의 제지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재판부는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주최측과 대행사의 공동 과실을 명확히 인정했다. 다만, 피해를 입은 보행자 A씨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마라톤 대회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충분히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지시에 따라 보행을 함으로써 스스로 안전을 도모할 의무가 있음에도, 참가자들의 동태를 살피지 않고 무리하게 속도를 높여 자신의 안전을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이러한 원고의 과실이 피해 발생과 확대에 기여했다고 보아 주최측의 배상 책임을 전체 손해의 7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향후 의식 회복이 없는 상태에서 소요될 치료비 약 2억 171만 원, 개호비(간병비) 약 1억 2,548만 원 등을 산정하고, 제반 사정을 참작해 위자료를 7,6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최종적으로 법원은 C 주식회사와 주식회사 D가 공동하여 원고에게 3억 5,348만 6,753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참고] 서울남부지방법원 2024가단227532 판결문 (2026. 3. 18.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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