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작동'이라더니 에어컨 고장…'잔금 후 책임 없다'는 특약, 이길 수 있나요?
'정상 작동'이라더니 에어컨 고장…'잔금 후 책임 없다'는 특약, 이길 수 있나요?
수리기사 "이사 전부터 냉매 샜다" 소견…부동산 매매 시 '숨은 하자' 책임 공방

이사 후 발견된 에어컨 고장에 대해 매도인이 특약을 이유로 수리비 지급을 거부했다. / AI 생성 이미지
최근 집을 매수해 이사한 A씨. 지난 5월 말 이사를 마치고 7월부터 시스템에어컨을 켰지만, 바람은 영 시원치 않았다.
결국 수리를 맡겼는데, 수리기사로부터 실외기 부품 파손으로 냉매가 새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기사는 냉매가 유출된 양으로 볼 때 이사 오기 전부터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고 설명했고, A씨는 이 통화 내용을 녹취했다.
A씨는 매도인에게 수리비를 요구했다. 하지만 매도인은 "고장 난 시점을 정확히 모르는데 왜 우리가 내야 하냐"며 거부했다. 계약서에 '잔금일 이후 발생하는 고장은 매수인이 책임진다'는 특약이 있다는 이유였다. A씨는 수리비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
계약서 특약에도 수리비 받을 수 있나
결론부터 말하면 A씨는 수리비를 보상받을 가능성이 높다. 변호사들은 계약서 특약보다 고장이 발생한 시점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계약서에는 '매도인은 잔금일 기준 정상 작동 상태로 인도하고 잔금일 이후 발생하는 고장은 매수인이 책임진다'고 명시돼 있다. 매도인이 책임을 피하는 근거지만, 동시에 매도인의 의무를 규정한 조항이기도 하다.
법무법인 호원 정형준 변호사는 "매매 시 이미 냉매 유출이 있었다면 이는 정상 작동 상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현송 조현재 변호사 역시 "특약이 '매도인은 잔금일 기준 정상 작동 상태로 인도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관건은 고장 시점이 잔금일 이전인지"라고 짚었다. 즉, 잔금일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숨은 하자'라면 특약과 무관하게 매도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사 전 고장' 입증이 관건…수리기사 소견이 결정적
관건은 '고장이 언제 발생했는가'를 입증하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A씨가 확보한 수리기사의 통화 녹취가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더신사 법무법인 김연주 변호사는 "핵심은 하자가 잔금일 이후 새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인도 당시 이미 존재했거나 진행 중이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도모 고준용 변호사는 "수리기사의 소견은 단순한 추측을 넘어 냉매 유출량이라는 객관적 지표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이를 구체적인 수리 내역서와 함께 정리하여 매도인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였어도, 인도 시점에 이미 하자가 잠복해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랜드로 신지수 변호사는 "인도 시 에어컨이 켜지는 것만 확인한 것은 정상 작동 상태 확인으로 볼 수 없다"며 "냉방 성능까지 확인하지 않은 것은 매도인이 정상 작동 상태로 인도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리비 받으려면…증거 확보 후 내용증명부터
변호사들은 A씨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 절차도 제시했다. 우선 증거를 확실히 확보한 뒤, 매도인에게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 순서다.
더신사 법무법인 장휘일 변호사는 "수리기사의 점검 내용과 냉매 누출량에 관한 설명, 통화녹취, 수리내역서와 영수증 등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후 매도인에게 하자의 발생 원인과 수리비를 구체적으로 적은 내용증명을 보내고, 협의가 되지 않으면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법적으로 하자담보책임은 하자를 안 날로부터 일정 기간 내에 행사해야 한다. 조현재 변호사는 "하자담보책임은 하자를 안 날부터 6개월 내에 행사해야 하므로 미룰 이유가 없다"며 "금액이 크지 않은 사건은 내용증명 단계에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반면 중개사에게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조 변호사는 "중개사는 숨은 고장까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책임을 묻기 쉽지 않다"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