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망 후 보증금 포기 선언…'선의가 부른 법적 함정'
남편 사망 후 보증금 포기 선언…'선의가 부른 법적 함정'
사실혼 배우자, '임차권 승계' 몰랐다간 월세·수리비 폭탄 맞을 수도

사실혼 남편 사후 빚을 피하려 보증금을 포기하면,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권 자동 승계로 더 큰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 AI 생성 이미지
사망한 사실혼 남편의 빚더미에서 벗어나고자 보증금 2천만 원을 포기하려 한 여성. 그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은 1원도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오히려 더 큰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한다.
법정상속인이 아니라는 사실만 믿고 안심했던 그녀 앞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이라는 예상치 못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증금 2천만 원, 그냥 다 가지세요"…어머니의 절박함
A씨의 어머니는 최근 사실혼 관계의 남편이 남긴 거액의 빚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있다. 법정상속인이 아니기에 남편의 채무를 직접 갚을 의무는 없지만, 함께 살던 빌라의 임대차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고인 명의의 보증금 2천만 원이 자칫 빚과 엮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어머니는 집주인의 대리인인 딸에게 "보증금 2천만 원은 1원도 안 받을 테니, 법정상속인에게 주든 공탁하든 알아서 하라"는 통보와 함께, 실제 거주한 기간의 월세만 정산하고 서둘러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변호사들은 이 결정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큰 함정, "어머니가 법적 임차인일 수 있습니다"
변호사들이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권 승계' 문제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임차권 승계 가능성을 경고하며 "보증금은 마음대로 포기할 대상이 아니라 월세, 원상회복, 상속인 권리까지 함께 정리해야 할 돈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에 따라 어머니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인의 뒤를 이은 '법적 임차인'이 되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보증금 반환 채권 역시 어머니에게 승계되므로, 섣부른 포기 선언은 무의미할 뿐더러 분쟁의 소지만 남긴다.
법무법인 정향 장두식 변호사 또한 "'법정상속인이 아니니 임대차와도 무관하다'는 전제는 그대로 성립하지 않을 수 있어, 승계 해당 여부가 1순위 쟁점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임차인이 사망한 후 1개월 안에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임차인의 지위가 자동 승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퇴거를 위한 변호사들의 '4대 철칙'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필요한 분쟁 없이 안전하게 집을 비울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첫째, 월세는 반드시 '대리권'을 확인한 후 보내야 한다. 집주인이 아닌 딸 계좌로 돈을 보낼 경우,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는 "반드시 문자로 '임대인의 대리인으로서 해당 계좌로 월세 수령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을 받고 보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섣부른 송금이 자칫 월세 미납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둘째, 기존 파손 수리비는 책임질 필요가 없다. 제이디종합법률사무소 전종득 변호사에 따르면,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는 통상적인 사용에 따른 마모를 넘는 손상에 한하며, "그 훼손 및 금액은 임대인 측이 주장·입증해야 합니다."
셋째, 모든 합의는 '서면'이 가장 안전하다. 통화 녹음이나 문자도 증거가 되지만, 법적 분쟁을 완벽히 막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넷째, '명도 완료' 증거를 확실히 남겨야 한다. 집주인이 퇴거를 거부하며 월세를 계속 요구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집을 비웠다는 객관적 증거가 필수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