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남긴 수 천벌 옷더미와 빚…'상속재산 파산'이 답일까?
아버지가 남긴 수 천벌 옷더미와 빚…'상속재산 파산'이 답일까?
사망한 아버지의 의류 재고, 상속인은 한정승인·자녀는 상속포기… 빚 청산을 둘러싼 복잡한 법률 문제, 전문가 8인의 진단

A씨 가족에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것은 수천벌의 의류와 빚더미였다. 해결책은?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아버지가 남긴 옷 수천 벌, 빚과 함께 상속됐다. 전국에 흩어진 재고를 끌어안은 가족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법률 전문가들은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열쇠로 '상속재산 파산'을 지목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평생을 바친 의류 사업은 유산으로 남았지만, 그 유산은 창고를 가득 메운 옷가지와 장부 속 빚이었다. 어머니는 물려받은 재산만큼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을, 자녀들은 아예 상속을 받지 않는 '상속포기'를 택했다.
하지만 문제는 전국 각 대리점에 뿔뿔이 흩어진 의류 재고였다. 손에 있지도 않은 이 재산을 어떻게 처분하고 빚을 갚아야 할까. 한 가족의 막막한 질문에 법률 전문가들이 답을 내놨다.
"빚쟁이가 가게 옷에 빨간 딱지 붙일 수 있나?"
가장 큰 걱정은 채권자들이 들이닥쳐 가게에 남은 옷들을 압류해가는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유선종 변호사(더신사 법무법인)는 "한정승인을 했더라도 채권자는 법적 절차를 통해 고인의 유체동산(의류 재고)에 대해 압류 및 경매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속받은 재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백인화 변호사는 "채권자가 압류하더라도 한정승인 결정문을 제출하면 경매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남은 재산이 있다면 원칙적으로 상속인이 정산해줘야 하므로 채권자의 압류 및 경매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남은 재산 가치에 따라 채권자의 권리 행사가 달라지는 셈이다. 김일권 변호사 역시 "한정승인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채권자들이 의류 재고를 압류하여 경매에 넘기기 어렵다"고 말해, 실무적으로는 쉽지 않은 절차임을 시사했다.
"헐값에 팔았다 원성 살라"…'상속재산 파산'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상속인이 직접 발 벗고 나서 흩어진 옷들을 팔아 빚을 갚으면 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절대 금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바로 채권자들과의 분쟁 가능성 때문이다. 백인화 변호사는 "상속인이 직접 팔아서 정산해주면, 채권자가 '왜 헐값에 처분해서 우리에게 돌아올 돈을 줄였느냐'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지점에서 '상속재산 파산' 제도가 해결사로 등판한다. 이는 법원이 중립적인 파산관재인을 선임해 모든 상속재산을 전문적으로 처분하고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절차다.
심준섭 변호사(법무법인 심)는 "현금화가 어려운 재고자산의 효율적 처리를 위해 상속재산 파산을 권장한다"며 "파산관재인의 전문적 관리로 채권자 이의제기를 예방하고 법적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도현 변호사(법률사무소 무율) 역시 "채권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고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제도"라며 파산 신청의 실익을 설명했다.
법원이 나선다…파산관재인의 처분, 얼마나 걸릴까
상속재산 파산을 신청하면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이 모든 것을 처리한다. 이들은 흩어진 의류 재고를 수거해 처분에 나선다. 홍현필 변호사는 "파산관재인이 염가로 매각도 가능하다"며 "대법원 사이트에 공고해 매각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입찰자가 없으면 상속인이 아주 싼값에 사들여 절차를 끝내는 방법도 있다"고 실무적 팁을 전했다.
처분 기간은 사안마다 천차만별이다. 백인화 변호사는 "보통 6개월에서 1년이라고 답하지만, 2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재고의 상태, 수거의 어려움 등에 따라 기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도 "처분 기간은 재고 회수 및 판매 가능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 가족에게 '상속재산 파산'이 가장 깔끔하고 안전한 길이라고 조언했다. 상속인이 직접 재산을 처분하다가 겪을 수 있는 법적 분쟁의 위험을 피하고, 모든 절차를 법원의 감독 아래 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남긴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해, 이제 가족은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선택을 고민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