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제출 진단서가 역고소의 증거로? 명예훼손 될까
법정 제출 진단서가 역고소의 증거로? 명예훼손 될까
전처가 낸 증거로 반격…변호사들 “무혐의 높지만, 전달 과정이 쟁점”

이혼 소송에서 낸 정신과 진단서를 전 배우자가 다른 사건 증거로 사용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 AI 생성 이미지
이혼한 전 배우자와의 법적 다툼에서 스스로 제출한 자신의 정신과 진단서가 오히려 자신을 공격하는 증거로 쓰이자 '명예훼손'이라며 반격에 나선 사건이 발생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재판부나 수사기관에 증거로 제출된 서류는 외부에 공개될 가능성이 낮고 정당한 '방어권 행사'로 볼 수 있어 무혐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도, 자료가 당사자 간에 전달된 과정의 '공연성'에 대해서는 일부 다른 시각도 존재해 귀추가 주목된다.
"내 진단서가 왜 거기서 나와?"…이혼 부부의 진흙탕 싸움
전 배우자 관계인 A씨와 B씨의 갈등은 이혼 후에도 계속됐다. B씨는 A씨를 특수협박 및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한 상태였고, A씨는 B씨의 지인 C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분쟁의 불씨는 C씨의 민사재판에서 터져 나왔다. B씨는 C씨를 돕기 위해 과거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서를 써 줬고, C씨는 이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에 A씨는 진술서 내용이 허위라며 B씨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나아가 A씨는 B씨의 진술서를 반박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정신과 진단서'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런데 이 진단서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민사소송의 피고였던 C씨는 A씨의 주장에 대응하고자 진술서 원작성자인 B씨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하며, A씨가 낸 서면과 진단서 전체를 메신저로 전달했다. 자료를 검토하던 B씨는 진단서에 적힌 '감정 조절 어려움, 자살 사고' 등의 소견이 과거 A씨가 자신에게 저지른 특수협박(칼 위협, 자살 협박 등) 행위를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판단, 본인의 형사고소 사건에 증거로 첨부했다.
격분한 A씨는 B씨와 C씨를 각각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법 위반(비방 목적 정보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법원 제출은 '공연성' 없나?…엇갈린 변호사들 시각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명예훼손죄의 핵심 요건인 '공연성(불특정 또는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 인정 여부다. 다수 변호사들은 재판이나 수사 목적으로 법원·수사기관에만 자료를 낸 것은 공연성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한병철 변호사는 "재판부와 수사기관에 한정된 제출이라면 명예훼손의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전체적으로 무혐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이동규 변호사 역시 "법원·수사기관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직무상 비밀 유지 의무가 있는 제한된 범위의 수령자이기 때문"이라며 공연성 성립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일부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법무법인 뿌리깊은나무 김영삼 변호사는 자료 전달 경로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B가 직접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공연성이 없고, B가 진술서를 작성하여 C에게 전달하여 C가 재판부에 제출한 경우에는 공연성이 있다"고 설명하며 "B가 C에게 진술서를 전달한 순간에 공연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소송 당사자 간 자료를 주고받는 행위 자체도 법리적으로 따져볼 문제라는 의미다.
'사실 확인'인가 '비방 목적'인가…메신저 전달의 쟁점
C씨가 B씨에게 메신저로 진단서를 보낸 행위는 정보통신망법상 '비방 목적'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더신사 법무법인 김연주 변호사는 "핵심은 ‘공연성’과 ‘비방 목적’ 여부"라고 강조하며, 목적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다수 변호사들은 소송 당사자 간의 사실 확인 과정이었다면 비방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법무법인(유) 에스제이파트너스 윤승진 변호사는 "C가 B에게 진단서를 메신저로 전달한 부분도, 소송·수사에 사용되는 서류를 관련 당사자에 보내 확인한 것에 불과하고, 제3자에게 공개·유포가 없다면 정보통신망법상 ‘공연한 전파’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비방이 아닌 방어권 행사를 위한 사실 확인이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혐의' 유력하지만…'제3자 유포' 여부가 최종 변수
종합적으로 법률 전문가들은 B씨와 C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재판 및 수사 과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이 뚜렷하고, 자료가 외부에 유출된 정황이 없다는 전제에서다.
하지만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IBS법률사무소 유진명 변호사는 "다만 예외는 있습니다. 진술서 내용이 명백한 허위이거나, 사건과 무관한 인신공격성 내용을 넣었거나, 진단서를 재판 외 제3자에게 추가 전송한 정황이 있으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수사기관이 피고소인들의 행위를 '정당한 권리 행사'로 볼지, 아니면 그 범위를 넘어선 '불법 행위'로 판단할지는 자료가 오직 소송 및 수사 관계자에게만 한정적으로 공유되었는지를 입증하는 데 달렸다.
법무법인 쉴드 남천우 변호사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해당 자료를 주고받게 된 경위와 접근 범위가 오직 방어권 행사에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었음을 객관적 정황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무혐의 처분을 이끌어내는 핵심 쟁점"이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