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술자리, 다른 판결…준강간 무죄·유죄 가른 '결정적 한 가지'
같은 술자리, 다른 판결…준강간 무죄·유죄 가른 '결정적 한 가지'
블랙아웃과 패싱아웃, 비슷해 보이지만 법정에서는 천지 차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술에 취해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을 잃은 사람을 상대로 한 준강간 사건은 성범죄 중에서도 법정 공방이 가장 치열한 분야로 꼽힌다.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그리고 피고인이 이를 이용해 간음했는지가 유죄 판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의 판결 경향을 분석해 보면, '피해자의 의식 상태'와 '항거불능 판단'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무죄와 유죄가 갈리는 결정적 차이점 세 가지가 드러난다.
"스스로 택시 타고 목적지 말했는데..." 무죄 판결의 반전
일부 준강간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례는 피해자의 '외관상 행동의 정상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천지방법원 2023. 5. 15. 선고 2022고합514 판결에서 피고인은 직장 동료인 피해자와 술을 마신 후 유사성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피해자는 이 사건 이후 술에 취하였음에도 비교적 정상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였음에도 나중에 이러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이후의 피해자의 행동으로 볼 때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에도 술에 취하였음에도 비교적 정상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피해자는 술에 취했으나 스스로 택시에 탑승하고 목적지를 말할 수 있었으며, 개인정보를 상세히 말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법원은 피해자가 행동은 정상적으로 했으나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는 '알코올 블랙아웃(기억상실)' 상태였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다고 오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대전지방법원 2023. 5. 19. 선고 2022고합343 판결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호텔 입실 시 스스로 자연스럽게 보행했고, 피고인에게 먼저 팔짱을 끼는 등 신체적 접촉을 시도했으며, CCTV에 웃으며 대화하고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확인된 점 등이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이처럼 무죄 사례의 핵심은 피해자가 겉으로 보기에 의사소통과 보행 등 기본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여부와,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였다.
"비틀거리고 주량 현저히 초과"... 유죄 판결의 명확한 기준
반면, 유죄 판결 사례는 피해자가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 즉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객관적인 정황으로 명백히 입증되었다.
서울고등법원 2023. 10. 20. 선고 2022노2228 판결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하여 술에 취한 피해자를 간음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주량을 현저히 초과하여 음주했고, CCTV에서 혼자 걷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특히 피해자가 침대에 눕기 전까지의 기억은 있으나 그 이후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이는 '패싱아웃(의식상실)'에 가까운 상태로 해석될 여지가 높았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하는 과정까지 있어 항거불능 상태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이 인정된 것이다.
부산고등법원(창원) 2023. 2. 8. 선고 2022노161 판결에서도 피해자가 성관계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깨어났을 때 나체 상태였다는 점이 인정되어 피고인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유죄 사례의 결정적 공통점은 피해자의 외관상 모습이 명백히 비정상적이었고, 피고인이 이러한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명백히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준강간'의 운명 가른 3대 핵심 쟁점 심층 분석
준강간죄의 유무죄를 가른 핵심 차이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외관상 행동의 정상성: 무죄 사례에서는 피해자가 스스로 걷고, 대화하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던 반면, 유죄 사례에서는 피해자가 비틀거리고, 혼자 걷지 못하며, 의식이 명료하지 않았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2. 기억의 연속성 (의식 상태): 무죄 사례에서는 피해자가 행동은 정상적이었으나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 상태였을 가능성이 인정되었다. 반면 유죄 사례에서는 피해자가 특정 시점 이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패싱아웃'에 가까운 의식 상실 상태였음이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3. 피고인의 인식 가능성: 무죄 사례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았으나, 유죄 사례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명백히 인식할 수 있었던 객관적 정황이 존재했다.
결국 법원은 술에 취한 피해자의 행동을 단순히 사후 기억에 의존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당시 CCTV 등 객관적 증거를 통해 피해자의 외관상 의식 상태가 정상이었는지 여부를 면밀히 따진다.
또한, 피고인이 피해자의 상태를 보고 '합의에 의한 관계'로 오인할 여지가 있었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
준강간 사건에서 유무죄는 피해자가 단순한 '기억상실(블랙아웃)' 상태였는지, 아니면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를 구분하는 법원의 날 선 판단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