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막말 녹음, '정의로운 도청'인가 '불법'인가…법적 딜레마 집중 분석
요양원 막말 녹음, '정의로운 도청'인가 '불법'인가…법적 딜레마 집중 분석
변호사들 "공익 목적 인정 시 증거 채택 가능성…신고 의무가 우선"

요양원에서 식사를 보조하던 직원이 어르신에게 막말을 쏟아냈고, A씨는 이를 노인학대라 판단하고 스마트폰으로 녹음했다./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애기도 아니고, 한 대 맞아야"…동료의 막말에 녹음 버튼 누른 당신, 처벌받을까?
"밥도 제대로 못 먹어, 애기도 아니고. 한 대 맞아야 돼 진짜." 요양원에서 근무 중이던 A씨의 귀에 동료 직원의 날 선 목소리가 꽂혔다. 식사를 보조하던 직원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순간, 명백한 '노인 학대'라 직감한 A씨는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녹음했다.
하지만 이내 '불법 녹음'으로 되레 처벌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어르신을 지키기 위한 용기였지만, 자칫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 요양원 막말 녹음, 과연 '정의로운 도청'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내 목소리 없는 녹음, '불법'의 기준은?
결론부터 말하면, 녹음 파일에 녹음자의 목소리가 포함되어야만 증거 효력이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변호사들은 녹음의 불법성 여부는 목소리 유무가 아닌 '대화 참여 여부'로 갈린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즉,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몰래 녹음하면 불법이지만, 대화 당사자 중 한 명이 녹음하는 것은 합법이다.
A씨의 경우는 해석이 엇갈린다. 요양원 직원과 어르신,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제3자인 A씨가 녹음한 것으로 볼 경우 형식적으로는 불법 감청에 해당할 수 있다. 법무법인 한일의 이광섭 변호사는 "정의로운 의도를 가졌더라도, A씨는 대화 당사자가 아니므로 불법감청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A씨가 대화가 벌어진 공간에 함께 있었던 만큼 넓은 의미의 '대화 참여자'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법무법인 태강의 정재영 변호사는 "본인이 근무 중 현장에서 직접 들은 직원 발언을 녹음한 것이라면 대화 당사자로 볼 수 있어 불법녹취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익 목적' vs '위법 증거'…법원의 판단은?
설령 녹음이 불법 감청에 해당하더라도, 재판에서 증거로 쓰일 길은 열려있다. 노인학대라는 반사회적 범죄를 막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 인정될 경우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최성현 변호사는 "노인학대 고발이라는 공익적 목적과 증거보전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위법성이 조각(阻却, 법적으로 위법한 행위가 아니게 됨)될 여지가 충분하다"며 "제3자 녹음이라도 그 경위와 목적이 정당하면 법원이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신중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의 서아람 변호사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보아 재판에서 증거능력이 배척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수사기관이 학대 정황을 확인하고 추가 조사를 하는 '단서'로는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중요한 단서를 달았다. 그는 "법적 리스크보다 학대 상황을 방치할 경우의 책임이 더 크다"고 조언했다.
결국 A씨의 녹음 파일은 그 자체로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학대의 실체를 밝히는 '첫 번째 열쇠'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의미다.
학대 의심되면 주저 말고 '신고'부터
변호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A씨가 '노인학대 신고의무자'라는 점이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요양원 등 노인복지시설 종사자는 직무상 노인학대를 알게 된 경우 즉시 노인보호전문기관(1577-1389)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어길 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신고의무자로서 수집한 녹음자료는 신고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라며 "어르신에게 모욕감을 주는 발언은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하며, 이를 포착한 녹음은 오히려 필요한 증거수집 행위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의 스마트폰에 담긴 목소리는 법정 다툼의 소지를 안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외면해서는 안 될 약자의 고통을 담은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법적 처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학대의 증거를 외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우리 사회 전체에 던져진 무거운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