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되기 전 성범죄, '사랑'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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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 되기 전 성범죄, '사랑'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2025. 12. 30 17:38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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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상태에서 당한 성범죄, 이후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면?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과 '입증 책임' 사이, 엇갈리는 법조계 시각을 심층 분석한다.

연인 관계가 성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사귄 후에 고소?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 성범죄 처벌 막지 못해…관건은 '이것'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한 걸까, 아니면 연인 사이의 오해였을까. 연인이 되기 전 만취 상태에서 당한 성범죄를 뒤늦게 고소하려는 한 여성의 사연이 법조계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교제 사실이 과연 성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는지, 법의 저울은 어디로 향할까.


"그날의 악몽,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으려 했지만…"


한 여성이 법률 상담의 문을 두드렸다. 사건은 전 남자친구와 연인이 되기 전, 한 술자리에서 벌어졌다.


"만취 상태였고 운동선수라 힘이 세서 밀어내지 못했어요. 힘으로 완전히 제압당했고 제 몸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원치 않는 성적 행위를 당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당시 상대에게 호감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결국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그러나 관계는 상처의 봉합이 아닌 악몽의 연장이었다. 스킨십을 할 때마다 그날의 공포가 되살아났고, 관계는 끝내 파국을 맞았다. 그녀는 뒤늦게나마 정의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사귄 건 사귄 거고, 범죄는 범죄"…고소 가능성에 '청신호'


다수의 변호사는 '교제 사실'이 범죄 성립을 막지는 못한다고 단언했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윤영석 변호사는 "만취상태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하였다면, 그 후에 교제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준강간죄 성립에는 지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준강간죄'란 피해자가 술에 취하는 등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저항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곤란한 상태)에 빠진 것을 이용해 간음할 때 성립하는 범죄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의사에 반하는 신체접촉은 명백한 강제추행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이후 교제 여부와 관계없이 당시의 범죄 사실은 그대로 인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적으로는 고소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 것이다.


"연인이었다는 한마디,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다"…입증의 벽


하지만 법정의 문을 여는 것과 승소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로티피 법률사무소의 최광희 변호사는 "사귀기 전이라면 그 이후에는 사귀었단 말"이라며 "정말 특별한 증거가 없는 한 고소 인용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짚었다.


가해자 측이 '연인 사이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었다며 동의를 주장할 경우,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이 거꾸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흔드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치열한 '진실 공방'이 예고되는 지점이다.


"왜 바로 신고 안 했나?" 대법원 '피해자다움 강요 말라' 일침


이러한 '신빙성' 논란에 대해 우리 법원은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성인지 감수성(성별 간의 불균형과 차별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민감성)'이다.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어긋난다"(대법원 2020도6965 판결)고 판시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를 즉시 단절하지 못하는 등 일반적인 통념과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피해 이후 연인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된다.


"내 진술이 유일한 증거라면? '이것'으로 신빙성 높여라"


결국 관건은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과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피해 진술"이라며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사건 전후 상대방과 나눈 문자메시지 ▲사건 직후 친구에게 고통을 털어놓은 대화 내용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과 상담 기록 등은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김경태 변호사는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성폭력상담소나 정신과 진료를 받길 권장한다"고 조언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시작…법적 조력·심리치유 병행해야"


결론적으로,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은 성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법의 문은 열려있다.


다만,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숨으려는 상대방의 주장과 '왜 이제 와서?'라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포기하기보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법적 권리를 찾고, 동시에 전문 상담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 함께 가야 한다. 용기 있는 고백이 온전한 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법적 조력과 심리적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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