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 한 인테리어 철거비를 내라고요?…'원상회복 폭탄' 맞은 임차인
내가 안 한 인테리어 철거비를 내라고요?…'원상회복 폭탄' 맞은 임차인
법원 판례는 '임차 당시 상태'로의 복구만 인정…'다음 임차인' 조건 불성립 시 특약 무효, 통상적 마모는 임대인 부담

계약 만기로 사무실을 비워주는 임차인 A씨는 자신이 설치하지도 않은 이전 세입자의 시설물까지 모두 철거하라는 임대인의 요구에 황당해 하고 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이전 세입자 인테리어인데 철거비를 내라고요?
5년 넘게 쓴 사무실을 떠나려던 임차인 A씨가 '인테리어 철거비 폭탄'을 맞았다. 자신이 설치하지도 않은 이전 세입자의 시설물까지 모두 철거하라는 임대인의 요구에 보증금 반환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A씨의 사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무실을 구하던 그는 이전 임차인이 설치해 둔 가벽, 바닥, 싱크대 등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은 곳을 계약했다. 초기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고, 에어컨은 200만원을 주고 이전 임차인에게서 직접 인수하기까지 했다.
평온했던 5년의 시간이 흐르고 계약 만기가 다가오자 문제가 터졌다. 임대인은 돌연 "이전 임차인이 해놓은 인테리어를 모두 철거하고 원상복구하라"고 요구했다. 가벽과 싱크대 철거는 물론, 바닥 공사 비용까지 떠넘겼다. 심지어 겨울철 단열을 위해 붙였던 '뽁뽁이' 자국을 문제 삼아 청소비 20만원까지 보증금에서 제하겠다고 통보했다.
"다음 임차인 없으면 철거"…이 독소조항의 진짜 의미는?
임대인이 근거로 내세운 것은 계약서의 한 조항이었다. '퇴거 시 원상복구를 원칙으로 한다. 단, 이전 임차인의 인테리어 시설물 등을 사용한 후 다음 임차인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철거 및 원상복구 한다'는 내용이었다. 임대인은 현재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으니, 해당 조항에 따라 A씨가 철거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해석은 달랐다.
법무법인 조율의 유환 변호사는 "해당 약정은 '다음 임차인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효력이 발생한다"며 "현재 다음 임차인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원상회복 의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임대인이 임의로 공사를 하겠다는 이유만으로 A씨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는 분석이다.
내가 설치 안 했는데도 철거 책임? 대법원 판례는 'NO'
애초에 현 임차인이 이전 임차인의 시설물까지 책임져야 할까? 이 근본적인 쟁점에 대해 대법원은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다.
법무법인 율천 박우진 변호사는 "임차인의 원상복구 의무는 자신이 임차 받았을 때의 상태로 되돌리면 되는 것이지, 별도 약정이 없는 한 이전 사람이 설치한 것까지 원상복구할 의무는 없다(대법원 90다카12035 판결)"고 명확히 설명했다.
즉, A씨는 자신이 입주할 당시의 상태, 다시 말해 이전 임차인의 인테리어가 존재하는 상태로 사무실을 반환하면 될 뿐, 그 이전의 '아무것도 없던 상태'로 돌릴 책임은 원칙적으로 없다는 의미다.
법률사무소 구도의 김종철 변호사 역시 "임차인이 기존 임대차 계약을 승계한 것이 아니라면, 해당 조항은 임대인에게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뽁뽁이 자국' 청소비 20만원, 보증금에서 빼도 되나?
임대인이 요구한 뽁뽁이 자국 청소비 20만원 역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차인은 통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마모나 손상, 이른바 '통상적 손모(損耗)'까지 복구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심의 심규덕 변호사는 "단열을 위해 뽁뽁이를 부착한 것은 통상적인 사용 범위 내의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이에 따른 흔적을 이유로 과도한 청소 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A씨가 200만원을 주고 인수한 에어컨 역시 그의 소유물이므로 자유롭게 철거해 가져갈 수 있다. 만약 임대인이 사용하길 원한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인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A씨가 임대인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법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계약서의 한 줄이 5년간의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 뻔했지만, 법리는 상식의 편에 서 있었다. 만약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나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대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