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3천만원 증발…'신탁 건물'의 덫에 걸렸다
보증금 3천만원 증발…'신탁 건물'의 덫에 걸렸다
집주인은 “갚겠다” 변명만, 은행은 퇴거 통보… 변호사들 “공인중개사를 먼저 노려라”

신탁 건물 계약으로 보증금을 떼일 위기라면, 설명 의무를 위반한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 보증보험으로 손해를 배상받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 AI 생성 이미지
2년 가까이 살아온 월세집에서 갑자기 '불법 점유자'라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집주인은 이미 재산이 바닥난 채 무책임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알고 보니 집주인에겐 권한조차 없는 '신탁 건물'이었다. 보증금 3000만원을 허공에 날릴 위기에 처한 세입자가 절박한 심정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집주인이 아닌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먼저 묻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느 날 날아온 퇴거요청서…“당신은 불법 점유자”
평범한 일상은 2025년 1월 2일, 은행에서 날아온 ‘불법 점유자 퇴거 요청서’ 한 장으로 산산조각났다. A씨는 2023년 5월,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으로 계약을 맺고 입주했다.
계약 당시 등기부등본을 교환받았지만, 자신의 무지로 ‘신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집주인은 한 중소건설산업 대표였고, A씨는 그를 믿고 신탁사가 아닌 집주인과 직접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신탁사의 동의서는 당연히 없었다. 2년 가까이 아무 문제 없이 살아왔기에 사기일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뒤늦게 집주인에게 연락하자 “돈을 갚아보겠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바닥난 집주인 재산, 희망은 공인중개사 ‘1억 보증증서’
A씨는 법률사무소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집주인의 재산은 대부분 저당이 잡혀 있어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했다.
이때 한 변호사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집주인이 아닌 계약을 중개했던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을 묶어 형사 사기죄로 고소하라는 것이었다. 희망의 불씨는 공인중개사가 가입한 ‘1억 보증증서’였다.
법무법인 어진의 신영준 변호사는 “1억 보증증서는 공인중개사의 과실 여부를 입증하여 받아가실 수 있다”며 “신탁 건물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중개인이 신탁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과실을 입증하면, 그가 가입한 보증보험을 통해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민사소송과 형사고소, 두 갈래 길의 해법은?
법률 전문가들은 민사소송과 형사고소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권고했다. 먼저 공인중개사의 설명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조이 윤관열 변호사는 “중개업자가 계약 당시 신탁 건물이라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거나, 신탁사의 동의서를 확인하지 않은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등기부등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임차인의 과실이 일부 인정돼 배상액이 감액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동시에 집주인과 공인중개사를 사기죄로 형사고소하는 방법도 있다. 더신사 법무법인 장휘일 변호사는 “임대인이 계약 당시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고, 보증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이 입증된다면, 사기죄의 성립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형사 고소는 처벌을 피하려는 상대방의 합의를 유도해 피해액의 일부라도 회수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보증금 회수, 최선의 시나리오는
결론적으로 전문가들은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최우선순위로 꼽는다. 집주인의 재산 상태와 무관하게 보험사를 통해 현실적인 자금 회수가 가능하다.
법률사무소 금옥 신현돈 변호사는 “신탁전세사기 사안에서 공인중개사의 중개대상물 확인ㆍ설명 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경우, 일반적으로 손해액의 40-80% 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보증증서에 기한 배상이 이루어집니다”라고 실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형사 고소는 직접적인 보증금 회수 수단은 아니지만, 민사 소송의 근거를 강화하고 가해자들을 압박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보조 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A씨의 사례는 부동산 계약 시 등기부등본과 신탁원부 확인, 그리고 중개인의 ‘확인·설명’ 의무를 끝까지 따져 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