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성추행범 잡았는데, 진단서에 ‘이 단어’ 꼭 넣어야 할까요?
버스 성추행범 잡았는데, 진단서에 ‘이 단어’ 꼭 넣어야 할까요?
가해자 자백·CCTV 있어도 수사관 미숙해 불안…피해자가 직접 챙겨야 할 것들

성추행 피해자는 법적 대응 시, 정신과 진단서에 실제 증상을 상세히 설명하고 진술 번복에 대비해 사건 경위 메모 등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 AI 생성 이미지
버스에서 자신을 강제추행한 가해자를 직접 붙잡아 경찰에 넘긴 A씨. 가해자는 혐의를 인정했고 CCTV 증거까지 확보됐지만, A씨는 담당 수사관이 미숙해 보여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신과 치료가 도움이 된다는 말에, A씨는 진단서에 들어가면 좋은 특정 단어가 있는지, 또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변호사들에게 물었다.
정신과 진단서에 '유리한 단어' 요청? “오히려 불리할 수도”
변호사들은 진단서에 특정 단어를 넣어 달라고 의사에게 인위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 태림 수원분사무소의 김정현 변호사는 “특정 단어를 넣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며 “의사는 실제 진료 결과에 따라 진단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사건 이후 겪는 불안감, 수면장애, 공황 증상, 우울감 등 실제 증상을 있는 그대로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최성현 변호사는 “진료 시 의사에게 버스 내 강제추행 피해를 당한 후 나타난 증상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진단서에 사건과의 인과관계가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실제 증상을 토대로 진단이 내려지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불안장애’, ‘급성스트레스반응’ 등의 진단명이 기재될 수 있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는 “이러한 구체적인 병명이 명시되고 ‘본 사건으로 인한 충격’이라는 문구가 포함되면 피해의 심각성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즉, 특정 단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증상을 상세히 설명해 자연스럽게 진단서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해자 자백만 믿지 말고…피해자가 직접 챙겨야 할 증거들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하고 CCTV까지 확보된 상황이라도, 피해자가 직접 추가 증거를 챙겨두는 것이 안전하다. 가해자가 이후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감명 안갑철 변호사는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향후 진술을 번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경찰 조사 이후에도 추가 자료를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호사들이 공통적으로 조언한 준비 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건 직후의 기억이 생생할 때 당시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최대한 상세하게 메모해 두는 것이다. 버스 노선과 위치, 추행 횟수와 방법, 가해자를 붙잡은 경위 등을 정리해 두면 나중에 진술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사건 당일 입었던 옷은 세탁하지 말고 보관하고, 피해 사실을 지인에게 알린 문자나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변호사 안영진 법률사무소의 안영진 변호사는 “피해 이후 일상에서 겪는 증상을 날짜별로 메모해 두시면 피해 정도 입증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수사관이 미숙해 불안하다면 '피해자 국선변호사' 활용을
A씨처럼 담당 수사관의 경험이 부족해 보여 불안할 경우,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특히 성폭력 범죄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요청해 무료로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 동석해 진술을 돕고, 피해자 입장에서 의견서를 제출하며 수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등 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법무법인 베테랑 서울 분사무소 박건일 변호사는 “수사관의 대응이 미덥지 않으시다면,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나 사선변호사를 고용하여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가해자 측에서 합의를 시도할 경우, 섣불리 혼자 대응하지 말고 반드시 변호사를 통해 진행해야 2차 피해를 막고 적절한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유) 에스제이파트너스 윤승진 변호사는 “변호인을 통해 적정한 합의금을 산정하고 가해자의 반성 정도를 확인하며 안전하게 진행하는 것이 2차 가해를 방지하고 온전한 피해 회복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