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처리한다기에 현장을 떠났을 뿐인데, '뺑소니 신고' 협박을 받았다면 유죄일까?
아버지가 처리한다기에 현장을 떠났을 뿐인데, '뺑소니 신고' 협박을 받았다면 유죄일까?
과실비율 불만 품은 상대방의 '형사처벌 압박'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가벼운 접촉사고 후, 보험계약자인 아버지를 믿고 현장을 떠난 운전자가 뺑소니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과실비율에 불만을 품은 상대방이 형사처벌을 무기로 압박해온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도주의 고의'가 없다면 혐의 성립 자체가 어렵다고 단언한다.
"아빠가 명함까지 줬는데"…'도주의 고의'가 없는 사고
운전자 A씨의 하루는 평범한 접촉사고로 시작됐다.
그는 즉시 차에서 내려 상대 운전자에게 다가가 연락처 교환을 시도했지만, 상대방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현장에 도착한 A씨의 아버지는 보험계약자로서 "여긴 내가 처리할 테니 먼저 가 있어라"고 말했고, A씨는 그 말을 믿고 자리를 옮겼다.
그 사이 아버지는 상대방과 사고 처리를 논의하고, 보험 접수는 물론 자신의 신원이 담긴 명함까지 건넸다.
심지어 상대방 역시 자신의 보험사와의 통화에서 "관계된 사람(A씨의 아버지)이 와서 처리해주고 있다"고 말한 사실까지 확인됐다.
모든 조치가 이뤄진 완벽한 사고 처리 과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며칠 뒤, 보험사로부터 A씨의 과실이 20~30%라는 안내가 나가자 상대방의 태도는 돌변했다. 그는 돌연 "뺑소니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A씨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특가법상 '도주치상'…법원은 무엇을 보나
이른바 '뺑소니'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제5조의3 제1항(도주치상죄) 위반에 해당한다.
이 죄가 성립하려면 사고 운전자가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해야 하며, 판례는 '사고 운전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할 목적', 즉 '도주의 고의'가 있었는지를 핵심 기준으로 판단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경우 '도주의 고의'를 인정하기 극히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김재헌 변호사는 "사고 직후 운전자가 대화를 시도했고, 아버지가 도착해 보험접수와 명함 전달까지 마쳤다면 운전자의 신원 확인 및 사고 처리 의무는 모두 이행된 것"이라며 "이를 뺑소니로 보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즉, A씨가 책임을 회피하려 사라진 게 아니라, 책임 있는 대리인(아버지)을 통해 모든 신원 정보와 사고 처리 절차를 진행했으므로 법이 처벌하려는 '악의적 도주'와는 거리가 멀다는 분석이다.
'민사'를 '형사'로…과실비율 뒤집기 위한 압박 카드
그렇다면 상대방은 왜 무리하게 '뺑소니'를 주장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민사상 과실비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압박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금전 문제인 과실비율 다툼(민사)과 형사처벌 대상인 뺑소니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에도,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100:0 과실을 받아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13년간 경찰 교통사고조사팀장으로 근무한 법률사무소 새율의 최성현 변호사는 "과실 비율에 불만을 품고 뺑소니로 신고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A씨의 경우 사고 처리를 위한 정상적 조치가 모두 이뤄졌기에 도주의 고의를 입증하기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억울한 뺑소니범 안 되려면…'이것'부터 확보하라
물론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도주'가 아니었음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현명하다.
전문가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다음 증거들을 즉시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첫째, 사고 직후부터 아버지가 도착해 대화하는 전 과정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 영상 및 음성 파일.
둘째, 보험사에 사고를 접수한 기록과 상담원과의 통화 녹취.
셋째, 아버지가 상대방에게 건넨 명함 사진이나 이를 목격한 증언. 넷째, 상대방이 '뺑소니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한 문자메시지나 통화 녹음이다.
이러한 증거들이 있다면, 설령 경찰 조사가 시작되더라도 '혐의없음'으로 조기에 종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요한 것은 형사적 위협에 굴복하지 말고, 민사적 다툼은 보험사를 통해 법리와 증거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