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성폭행, 이제라도 고소할 수 있을까? 성범죄 공소시효 따져보니
2년 전 성폭행, 이제라도 고소할 수 있을까? 성범죄 공소시효 따져보니
공소시효 10년 이상
일관된 진술과 진료기록이 결정적 증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년 전 그날, 시간은 멈췄다. 첫 직장에서 동료에게 당한 끔찍한 기억은 외상후 스트레스가 되어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하지만 가해자는 되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2차 가해를 멈추지 않았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피해자 A씨가 2년 만에 법의 문을 두드렸다.
사건은 2022년 4월, A씨의 첫 직장에서 벌어졌다. A씨는 직장 동료의 차 안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당시 회사의 임금 체불 문제까지 겹쳐 경황이 없었고, 가해자의 교묘한 가스라이팅과 경찰 조사 과정에서 겪을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포기했다.
하지만 상처는 곪아 터졌다. 정신과 약을 먹어도 끔찍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고, 일상은 망가졌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가해자의 태도였다. 그는 퇴사한 A씨에 대해 다른 동료들에게 험담을 늘어놓는가 하면, A씨에게는 "내가 상처를 받았다",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며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A씨의 손에 남은 증거는 당시의 심경을 담은 메모와 정신과 진료 기록뿐.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변호사들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공소시효 10년, "지금도 충분히 고소 가능"
변호사들은 2년 전 사건이라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가 10년 이상으로 길기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는 범죄 유형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현행법상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공소시효는 10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는 7년이며, 성폭력처벌법상 범죄는 유형에 따라 7년에서 15년까지 다양하다.
예서 법률사무소의 배재용 변호사는 "2022년 발생한 사건은 지금도 고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013년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죄) 조항이 폐지되면서 고소 기간의 제한도 사라졌다.
가해자가 직장 동료였다는 점, 특히 직장 내 지위를 이용했다면 가중처벌될 수도 있다. 김일권 변호사는 "가해자가 직장 상사였다면 가중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물증 없어도 '일관된 진술'과 '정황 증거'가 핵심
시간이 많이 흘러 직접적인 물적 증거가 없는 점은 불리한 요소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의 특성상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에 무게를 두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법무법인 JLP의 장동훈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면 직접 물증이 부족해도 충분히 수사가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 역시 "성범죄 사건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라며 "누구의 진술이 더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는지가 사건의 결론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A씨가 받고 있는 정신과 치료 기록과 당시 작성한 메모는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매우 중요한 '정황 증거'가 된다. 법무법인(유한) 한별의 김전수 변호사는 "사건 이후 정신의학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면, 이러한 진료 기록은 당시 피해 상황과 정신적 피해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데 상당히 유리한 증거가 된다"고 분석했다.
가해자의 '2차 가해'는 별도 범죄
오히려 가해자의 현재 행동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퇴사 후 다른 동료들에게 A씨에 대한 험담을 한 행위는 '명예훼손죄'로,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식의 발언은 '협박죄'로 추가 고소할 수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더라도, 범행을 감추려는 시도로 비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A씨가 두려워했던 경찰의 2차 가해 문제도 현재는 상당 부분 개선됐다. 법률사무소 조이의 윤관열 변호사는 "피해자의 고소와 조사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진술보호조치, 조사자 지정, 신뢰관계인 동석 등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가스라이팅과 세상의 편견에 갇혀 2년간 고통의 시간을 보낸 A씨. 뒤늦게 용기를 낸 그녀의 손에 법이 정의의 칼을 쥐여줄 수 있을지, 이제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