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짓밟아 숨지게 했지만 '살인 고의 없다' 징역 8년
머리 짓밟아 숨지게 했지만 '살인 고의 없다' 징역 8년
누범 기간 중 '선배 행세' 불만에 무차별 폭행으로 지인 숨지게 한 40대
2심서 징역 8년 선고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죽어도 된다"는 섬뜩한 외침과 함께 길바닥에 쓰러진 피해자의 머리를 수차례 짓밟은 피고인. 피해자는 약 10개월간 중환자실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사투를 벌이다 결국 숨졌지만, 법원은 끝내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잔혹한 범행 수법과 "죽여버리겠다"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살인의 고의를 부정하며 상해치사죄를 선택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배에게 맞고 애먼 지인에게 화풀이... 춘천 주점 앞의 비극
사건은 지난 2024년 12월 21일 밤, 강원도 춘천시의 한 주점에서 시작되었다. 피고인 A씨는 동네 선배인 지인과 그 일행인 피해자 D(55)씨와 우연히 합석해 술을 마셨다. 술자리 도중 A씨는 과거의 잘못을 이유로 동네 선배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선배가 자리를 뜬 뒤 남아있던 피해자 D씨에게 화살을 돌렸다.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D씨가 자신에게 선배 행세를 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은 것이 화근이었다. 날을 넘긴 12월 22일 새벽 0시 15분경, A씨는 주점 앞 노상에서 앉아 있던 D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행을 시작했다.
A씨는 넘어진 D씨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오른발로 얼굴을 밟는 등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주점 업주와 행인들이 달려와 만류했으나 A씨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 있는 D씨의 가슴을 차고, 양발로 수차례 얼굴을 짓밟거나 걷어찼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목격자들에게 "죽어도 된다"고 소리쳤으며, 이후 체포 과정에서도 "나가면 죽여버리겠다"는 폭언을 뱉었다.
10개월간의 사투와 공소장 변경... 살인인가 상해인가
이 폭행으로 D씨는 외상성 경막하출혈과 두개내출혈 등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검찰은 당초 A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25년 10월 13일, 피해자 D씨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합병증(뇌경색, 패혈증 등)으로 사망하면서 사건의 국면은 완전히 바뀌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주위적 공소사실을 살인죄로, 예비적 공소사실을 상해치사죄로 변경하여 공소장을 다시 제출했다. 피해자가 사망한 만큼 살인의 고의를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검찰의 시각과 달랐다. 춘천지방법원 제2형사부(2025고합10)와 서울고등법원 춘천제1형사부(2025노143)는 모두 A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살인 고의 부정하며 꼽은 4가지 핵심 사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다음의 사실관계에 주목해 법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한다.
첫째, 우발적 범행과 원한 관계의 부재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우연히 합석한 사이로 특별한 원한이 없었으며, 선배에게 맞은 분풀이로 시작된 우발적 폭행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폭행의 방식과 중단 시점이다. CCTV 분석 결과, A씨는 피해자를 강하게 가격할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스스로 폭행을 멈추고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등 이성을 완전히 잃고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모습은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셋째, 현장 상황의 오판 가능성이다. 사건 직후 출동한 경찰과 목격자들이 즉각적인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을 만큼, 현장에서 피해자의 사망 가능성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넷째, 발언의 성격이다. "죽어도 된다"는 발언은 살해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기보다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쏟아낸 분노의 표현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았다.
징역 4년에서 8년으로... "누범 기간 중 범행 엄벌"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살인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유지하되, 예비적 공소사실인 상해치사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1심에서 중상해죄가 적용되어 징역 4년이 선고됐던 형량은 피해자가 사망함에 따라 징역 8년으로 대폭 늘어났다.
재판부(재판장 이은혜)는 "별다른 저항을 할 수 없었던 피해자를 수차례 짓밟아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피고인이 누범 기간 중이었음에도 자숙하지 않고 범행을 저지른 점,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검찰이 청구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은 기각되었다. 현행법상 상해치사죄는 전자장치 부착 대상인 '살인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적 이유 때문이다.
[참고] 춘천지방법원 2025고합10 판결문 (2025. 6. 19. 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