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외침 짓밟은 연인의 손… 사랑인가, 범죄인가
“그만!” 외침 짓밟은 연인의 손… 사랑인가, 범죄인가
머리채 잡고 강제 스킨십… 법조계 “명백한 추행” vs “증거 없어 무고 위험” 엇갈린 경고

연인이 명시적 거부에도 강제로 스킨십을 한 A씨에 대한 형사 처벌을 두고 법조계 의견이 갈렸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연인 간 강제 스킨십, 법의 심판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원치 않는 스킨십을 당했다면, 이는 사랑싸움일까 범죄일까. '그만하라'는 외침에도 머리채를 잡고 강제 추행한 남자친구를 고소할 수 있는지 묻는 한 여성의 사연에 법조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신호 없인 안돼” 약속 깬 배신감
사건의 시작은 연인과 한 약속이 깨지면서부터였다. A씨는 남자친구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스킨십은 하지 말아 달라”고 명확히 선을 긋고, 스킨십을 원할 땐 서로 ‘신호’를 주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남자친구는 아무 신호 없이 A씨의 가슴 아랫부분까지 손을 쓸어 올렸다. 약속이 깨졌다는 당혹감과 차가운 배신감이 뒤섞여 A씨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남자친구는 황급히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A씨는 혼란 속에서 그날의 충격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그만!” 비명 짓밟은 폭력
일주일 뒤, 더 노골적인 폭력이 A씨를 덮쳤다. 남자친구가 귀를 핥자 그녀는 “그만하라”며 명확히 거부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A씨가 고개를 돌려 피하려 하자, 손으로 머리를 잡아 힘으로 누르며 행위를 계속했다.
머리를 짓누르는 힘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했다. 공포가 A씨를 잠식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만하라'는 비명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여러 번의 절규 끝에야 남자친구는 행동을 멈췄다.
“명백한 추행” vs “무고 위험” 엇갈린 경고
A씨의 사연에 대다수 변호사는 “연인 관계라도 명백한 강제추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재황 변호사는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위는 강제추행”이라며 “신체적으로 제압한 행위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성재 변호사 역시 “피해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면 물증이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부는 신중론을 폈다. 조기현 변호사는 “성범죄 고소 사건 중 상당수가 무혐의(혐의가 없다는 검찰의 처분)로 종결된다”며 “뚜렷한 물증이 없고, 사건 직후 헤어지지 않은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오히려 무고(허위 사실로 타인을 고소하는 범죄)로 역고소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민경철 변호사도 “연인 관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강제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법원의 저울, 핵심은 ‘성적 자기결정권’
법원의 판단 기준은 결국 ‘성적 자기결정권(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성적 행동을 결정할 권리)’ 침해 여부다. 우리 형법 제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경우 강제추행죄로 처벌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때의 폭행은 상대방의 저항을 완전히 억누를 정도가 아니더라도, 의사에 반해 힘을 행사하는 ‘유형력(물리적인 힘)’ 자체를 의미한다. A씨의 두 번째 사례처럼 명확한 거부에도 힘으로 제압하는 행위는 강제추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범죄는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이 중요한 증거가 된다. A씨가 작성한 일기 역시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증거다. 사건 직후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이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법원은 연인 관계 등 특수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혼란을 점차 폭넓게 고려하는 추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 그 모호한 경계선 위에서 법의 저울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