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다음 달 출산인데 남편은?" 이제 아빠도 '미리' 쉰다, 반쪽 국회가 던진 해법
"당장 다음 달 출산인데 남편은?" 이제 아빠도 '미리' 쉰다, 반쪽 국회가 던진 해법
야당 보이콧 속 여당 단독 처리
'남녀고용평등법' 등 63건 통과
유산·사산 시 3일 유급 휴가 신설

분주한 민주당 원내지도부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장은 절반이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빈자리 사이로 통과된 법안들은 당장 내일의 출근과 육아를 고민하는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사법 개혁안'에 반발해 본회의를 보이콧(거부)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처리된 63건의 법안 속에는 대한민국 직장인 부모들의 숨통을 틔울 획기적인 변화가 담겨 있었다.
2026년 2월 12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포함한 민생 법안들을 가결했다. 핵심은 '아빠의 권리' 확대다. 그동안 아이가 태어나야만 쓸 수 있었던 남편의 출산 휴가가 이제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내가 가장 힘겨운 시기부터 사용할 수 있게 변경됐다.
"아기 낳기 전이 더 힘들다"... 남편, 출산 50일 전부터 휴가 쓴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배우자 출산휴가'의 이름이 '출산 전후 휴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니다. 기존 법은 배우자가 출산한 '후'부터 휴가를 쓸 수 있게 제한해 뒀다. 만삭의 아내가 거동이 불편해 도움이 절실한 시기에도, 남편은 휴가를 아껴뒀다가 출산 후에야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법의 괴리'가 존재했다.
이제는 다르다. 개정안에 따라 남편은 배우자의 출산 예정일 50일 전부터 휴가를 당겨 쓸 수 있다. 임신 막달, 언제 응급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남편이 아내 곁을 지킬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슬픔을 나누는 권리'의 신설이다.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배우자의 유산·사산 시에도 남편에게 5일의 휴가가 주어진다. 이 중 3일은 월급이 나오는 유급 휴가다.
유산의 아픔을 겪은 아내를 홀로 두고 출근해야 했던 남편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부부가 함께 아픔을 극복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또한, 배우자가 유산이나 조산의 위험이 있다는 의사 소견이 있을 경우, 남편이 즉시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조항도 새로 생겼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족쇄도 풀렸다. 그간 사장님은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단축 근무 신청을 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해당 거절 사유가 삭제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법은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에 더 큰 손을 들어줬다.
내 정보 털렸을까? '의심'만 들어도 기업은 입 열어야 한다
직장인 부모를 위한 법안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개인정보와 직결된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도 이날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핵심은 기업의 '깜깜이 대응' 차단이다.
기존에는 개인정보 유출이 확실하게 '확인'된 경우에만 기업이 이용자에게 알리면 됐다. 이 때문에 내 정보가 유출됐는지조차 모른 채 보이스피싱 등 2차 피해를 겪는 사례가 많았다. 개정안은 사업주가 개인정보 유출 등의 '가능성'을 인지한 순간, 즉시 고객에게 알리고 피해 최소화 방법을 안내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도 대폭 높아졌다. 중대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 시, 전체 매출액의 10%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이 개인정보 보호에 돈을 쓰는 것을 '비용'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여기게 만들 강력한 장치다.
이 외에도 인천과 부산에 바다와 관련된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해사국제상사법원'을 설치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민생 인질" vs "입법 쿠데타"... 법안은 통과됐지만 갈등은 '현재진행형'
민생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는 순간에도 여의도의 공기는 차가웠다. 국민의힘은 전날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수를 늘리는 법안 등 사법 개혁안을 단독 처리한 것에 반발하며 본회의장 입장을 거부했다.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민생을 인질로 삼고 있다"며 "설 명절을 앞두고 국민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비정한 행태"라고 맹비난했다. 반면,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사법 시스템을 파괴하고 사법부를 장악하려 한다"며 이를 "입법 쿠데타"로 규정하고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아동수당 지급액을 올리는 등 여야 이견이 없었던 일부 법안조차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신청 목록에서 빠지지 못해 이날 처리되지 못했다.
설 연휴가 지난 뒤인 오는 26일, 민주당은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다시 예고하고 있다. '아빠 출산 전 휴가'라는 선물 보따리는 풀렸지만, 여야의 극한 대치라는 폭탄은 여전히 째깍거리고 있다. 입법부의 시계가 민생을 향해 흐를지, 정쟁의 늪에 멈춰 설지 국민의 눈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