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안납니다" 칼 든 공무원, '아내의 용서'는 구원일까 덫일까
"기억이 안납니다" 칼 든 공무원, '아내의 용서'는 구원일까 덫일까
특수협박 혐의 검찰 송치…'반성문이 독'이라는 경고까지, 엇갈린 생존 전략

부부싸움 중 수면제를 먹고 기억을 잃은 채 칼을 든 지방 공무원이 특수협박 혐의로 입건됐다. / 셔터스톡
부부싸움 끝 수면제를 먹고 필름이 끊긴 지방 공무원. "어리석고 한심하게도 저는 두 건의 사건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의 손엔 칼이 들려있었고, 그는 특수협박 피의자가 됐다. 아내는 눈물로 선처를 호소하지만, 공무원 징계까지 걸린 절체절명의 상황. "반성문을 써내면 안 된다"는 일부 변호사의 날 선 경고까지 나오며 그의 운명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한밤중 부부싸움이었다. 술을 마신 A씨는 아내가 가진 수면제를 버리려다 오해가 쌓였다. 아내가 약을 먹으려는 줄 알고 홧김에 자신이 삼켰고,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남은 약을 녹여 버리는 것을 또 오해해 입에 털어 넣었다. 거기서부터 A씨의 기억은 없다.
아내의 진술로 재구성된 그날의 조각은 위태롭다. 다른 방에 아이들과 있던 아내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안방에 가보니, A씨가 침대에 반쯤 기댄 채 힘없이 칼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를 향한 어떤 위협적인 말이나 행동도 없었다. 오히려 남편이 스스로를 해칠까 두려웠던 아내는 딸에게 경찰 신고를 부탁했다.
경찰이 도착하는 소리에 A씨는 들고 있던 칼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후 A씨는 술을 마시고 자해한 뒤 아내와 통화했는데, 이 행위마저 추가 협박 혐의로 입건됐다.
결국 유치장에 입감됐던 A씨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했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5년 전 우울증 치료를 중단했던 그는 최근 증상이 재발했음에도 병원 가기를 미루다 파국을 맞았다. 현재 A씨는 정신과에서 8주간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다시 치료에 임하고 있다.
벼랑 끝에 선 A씨에게 가장 큰 버팀목은 피해자로 지목된 아내다. 아내는 남편의 모든 행동을 용서한다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불원서와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동료와 친구들도 그의 선처를 호소하고 나섰다. 경찰 역시 이를 참작해 '가정사건'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법률사무소 새율 최성현 변호사는 "검찰의 처분과정에서 충분히 선처를 기대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입니다"라며 아내의 용서와 정신과 치료 사실 등을 근거로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법률사무소 태희 민경남 변호사는 "자칫 실형까지도 가능한 사안"이라며 특수협박죄의 무거움을 경고했다. 특히 법률사무소 피벗 김경수 변호사는 통상적인 대응에 치명적 허점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내 및 가족들이 탄원서를 내더라고 A씨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일 뿐 '불기소'를 위한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라고 단언했다. 심지어 "혹여라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내용의 반성문이나 A씨의 죄를 인정하는 탄원서를 써내면 안 됩니다"라며, 섣부른 반성이 오히려 혐의를 스스로 인정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법조계의 엇갈린 진단은 생존 전략의 갈림길로 이어진다. 핵심 쟁점은 '협박의 고의'가 없었다고 다툴 것인가, 아니면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할 것인가이다.
다수의 변호인은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법률사무소 조이 윤관열 변호사는 우울증 진단과 음주, 약물 복용 정황이 심신미약 주장의 중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수면제 복용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를 적극적으로 주장해 불기소 처분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부는 더 공격적인 변론을 주문한다. 검사 출신인 법률사무소 가온길 백지은 변호사는 "술을 먹고 자해한 사실만으로는 특수협박이 되지 않는다고 다투어야 할 상황"이라며 협박 혐의 자체를 부인해야 한다고 봤다. 김경수 변호사 역시 "A씨가 아내분을 협박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법적으로 설명하여야 합니다"라며 사건의 본질이 '협박'이 아닌 '걱정에서 비롯된 자해 소동'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의 가장 큰 걱정은 공무원 신분이다. 그가 직을 지키기 위한 최상의 결과는 검찰 단계에서 '기소유예'(혐의는 인정되나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나 '가정보호사건'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심할 수는 없다. 「지방공무원법」 제72조와 「지방공무원 징계규칙」에 따르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는 것뿐만 아니라 기소유예나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경우에도 혐의가 인정되면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법무법인 베테랑 김재헌 변호사는 "공무원 신분과 관련해 징계가 우려되므로, 사건 종결 후 별도로 직장에서 요구하는 서류나 소명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A씨의 운명은 법리 다툼의 결과에 달렸다. 법원은 징계의 타당성을 판단할 때 비위의 내용, 행정 목적, 징계 기준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대법원 2008두15404 판결).
법조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배우자의 명확한 처벌불원 의사 ▲심신미약을 입증할 정신과 기록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노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에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