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후 선거벽보 훼손, '고의성' 부인이냐 '선처' 호소냐
음주 후 선거벽보 훼손, '고의성' 부인이냐 '선처' 호소냐
정치적 목적 없어도 2년 이하 징역 가능... 전문가들 '100만원 미만 벌금' 목표로 한 양형 전략 중요

지난 5월,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A씨가 무심결에 선거벽보를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술에 취해 우산으로 '툭' 쳤을 뿐인데…선거법 위반이라니요
"술에 취한 저의 한순간 실수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한 시민이 술김에 우산으로 선거벽보를 쳤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져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A씨는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취기에 비틀거리던 그는 손에 든 우산으로 길가에 붙어있던 무언가를 무심코 내려쳤다. 그가 훼손한 것이 선거 벽보라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평소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먹고 살기 바빴던 그에게는 그저 벽에 붙은 종이일 뿐이었다.
평온했던 일상은 그날 오후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으로 산산조각 났다. 자신의 행동이 찍힌 CCTV가 있다는 말에 A씨는 곧장 경찰서로 자진 출석했다. 그는 진술서를 쓰고, 밤새 느꼈던 후회와 반성을 담아 반성문도 제출했다.
하지만 사건은 그의 바람과 달리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불구속 상태로 사건을 검찰로 보냄)됐고, 이제 그는 선거사범이라는 무거운 이름표를 단 채 검사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정치 관심도 없는데…'선거벽보 훼손' 얼마나 무거운 죄?
A씨처럼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었더라도 선거벽보를 훼손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엄하게 다뤄진다. 공직선거법 제240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나 현수막 등 선전시설을 훼손·철거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유권자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한 핵심 조항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신의 박지영 변호사는 "공직선거법상 벽보 훼손죄는 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돼 처벌 수위가 결코 가볍지 않다"며 "단순 실수라고 주장하더라도 객관적인 훼손 행위가 명백하다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몰랐다'는 주장, 통할까?…'고의성' 두고 엇갈린 조언
A씨 사건의 최대 쟁점은 '고의성' 여부다. A씨는 "선거벽보인지 몰랐다"고 항변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부는 무죄 가능성을 열어두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섣부른 혐의 부인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법률사무소 정중동의 김상윤 변호사는 "'술에 취해 몰랐다'는 변명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며 "벽보라는 형태 자체가 선거 홍보물임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무리한 부인은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비쳐 선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술에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이 줄어드는 '심신미약(사물 분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이 인정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결국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범행의 고의성을 끝까지 다투며 무죄를 주장하거나, 혹은 실수를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선처를 구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오른의 백창협 변호사는 "혐의를 부인하기 어렵다면, 특정 후보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 등을 강조해 처벌 수위를 낮추는 양형(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일) 변론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벌금 100만원이 운명 가른다…'기소유예'가 최선인 이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검찰 단계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것이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으로,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 A씨처럼 초범이고, 자진 출석해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정치적 목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면 기대해볼 수 있는 결과다.
만약 재판으로 넘겨지더라도 벌금 액수가 운명을 가를 수 있다. 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의 서아람 변호사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향후 5년간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되는 등 피선거권이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사회인이자 한 가정의 구성원인 A씨에게는 단순 벌금 이상의 치명적인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A씨에게는 자진 출석과 반성문 제출 외에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를 진솔하게 설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진정성 있는 태도를 꾸준히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무법인 태강의 정재영 변호사는 "초범이고 반성 의지가 뚜렷하며 피해가 크지 않다는 점을 잘 소명하면 무겁게 처벌될 가능성은 낮다"며 "벌금 100만원 미만을 목표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순간의 실수가 선거사범이라는 주홍글씨로 남을지, 아니면 깊은 반성을 통한 선처로 마무리될지는 이제 A씨의 태도와 검찰의 판단에 달리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