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사고, 경찰은 "합의금 필요 없다"는데…12대 중과실, 처벌 피할 수 있나?
횡단보도 사고, 경찰은 "합의금 필요 없다"는데…12대 중과실, 처벌 피할 수 있나?
경미한 타박상인데도 형사입건…"처벌불원서만 받으라"는 수사관 말 믿어도 될까

12대 중과실 교통사고는 상해가 경미해도 형사처벌 대상이므로 수사관의 말만 믿고 합의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 AI 생성 이미지
우회전 중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와 부딪힌 운전자 A씨. 다행히 피해자는 경미한 타박상에 그쳤지만, A씨는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으로 형사 입건됐다.
사건을 맡은 수사관은 "워낙 경미한 상해라 합의금 없이 처벌불원서만 받아도 될 것"이라고 안내했다.
A씨는 수사관의 말대로 합의금 없이 처벌불원서만 받아도 되는지, 혹시 모를 처벌을 피하기 위해 기소유예를 받을 가능성은 있는지 변호사들에게 물었다.
경찰 말만 믿고 '합의' 안 했다가…변호사들 "위험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사관의 안내만 믿고 안일하게 대응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변호사들은 지적했다. A씨의 사고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해당해, 종합보험에 가입했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형사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선승의 안영림 변호사는 "수사관은 그렇게 설명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합의도 하지 않고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집현전 김묘연 변호사 역시 "실제 피해자 입장에서는 합의 없이 처벌불원서만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라고 봤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유환선 변호사는 "12대 중과실 교통사고가 맞다고 하면, 처벌불원서가 들어가더라도 사안은 종결되지 않고 검찰, 법원까지 가게 된다"고 짚었다. 처벌불원서가 사건을 종결시키는 효력은 없지만, 처벌 수위를 정하는 데 중요한 '양형 자료'가 되기 때문에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자동차보험으로 치료해 줬는데, 이걸로 합의된 것 아닌가요?
A씨는 자동차보험을 통해 피해자에게 치료비 등이 지급되고 있다는 점도 궁금했다. 이것만으로 합의가 됐다고 볼 수는 없을까?
변호사들은 자동차보험을 통한 보상은 '민사상 손해배상'일 뿐, '형사 합의'와는 명백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라미 법률사무소 이희범 변호사는 "보험회사의 치료비·보상금 지급은 민사상 피해회복일 뿐, 피해자가 운전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는 아니다"라며 "보험처리와 별도로 피해자 본인의 서명 또는 날인이 있는 처벌불원서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률사무소 편율 신상의 변호사도 "보험처리는 민사상 피해 회복 절차의 하나이므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는 별도의 서면으로 명확히 받아두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합의금 없는 합의서'도 가능…기재 내용이 중요
그렇다면 합의금이 반드시 오가야만 합의서나 처벌불원서를 받을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합의금 없는 합의서' 작성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반드시 금전적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해 정도가 경미한 경우, 피해자가 합의금 없이도 원만히 처벌불원 의사를 밝혀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합의서에는 "보험을 통한 손해배상으로 피해가 회복되었고, 추가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좋다.
탄탄 이수천 변호사는 "반드시 합의금이 지급되어야만 합의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제이디종합법률사무소 전종득 변호사는 합의서와 처벌불원서에 ▲당사자 인적사항 ▲사고일시·장소 ▲'민·형사상 이의 제기 안 함' 및 '처벌을 원하지 않음' 문구 ▲금전지급 유무(0원 포함) ▲자필 서명·날인 등이 명확히 기재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미한 사고, '기소유예' 가능성은?
A씨가 가장 바라는 결과는 '기소유예' 처분이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으로,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기소유예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최성현 변호사는 "부상이 경미하고 처벌불원서까지 확보된다면 (기소유예)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최종 처분은 검사의 재량이므로 구체적인 사건 전망은 변호사와 직접 상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12대 중과실 사고는 경미하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따라서 수사관의 말만 믿기보다는 피해자와 원만히 소통해 '처벌불원' 의사가 담긴 합의서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피해 상해가 경미하고 초범이며, 보험 처리와 함께 피해자의 용서까지 받는다면 기소유예 처분을 기대해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