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에 재산 포기” 각서, 법정 가면 휴지조각?
“5천만원에 재산 포기” 각서, 법정 가면 휴지조각?
“내 잘못” 죄책감에 쓴 각서의 효력은? 전문가들 “2년 내 청구 가능, 무효 다툴 여지 커”

이혼 전 심리적 압박으로 쓴 재산 포기 각서는 무효 가능성이 높다. /AI 생성 이미지
“제 잘못으로 이혼하는 거라 5천만 원만 받고 재산 포기 각서를 써 줬습니다. 결혼 생활 동안 재산 형성에 기여한 걸 생각하면 너무 억울합니다.”
이혼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감에 쓴 각서 한 장이 평생 일군 재산을 포기하는 족쇄가 될까?
법률 전문가들은 각서의 효력을 다툴 여지가 충분하며, ‘2년의 골든타임’ 안에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길이 열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부부 공동재산의 규모나 각자의 기여도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쓴 각서라면 법정에서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내 탓이라…” 5천만원에 끝낸 결혼, 뒤늦은 후회
지난 2025년 4월 말, A씨는 전 남편과 협의이혼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혼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A씨는 전 남편의 요구대로 5천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체의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재산포기각서를 작성했다.
전 남편은 이 각서를 공증까지 받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혼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혼인 기간 내내 재산 형성에 상당 부분 기여했음에도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으로 모든 권리를 포기한 사실이 억울하게 다가왔다.
A씨는 이미 써 준 각서를 되돌리고 자신의 정당한 몫을 찾을 수 있을지 변호사들의 문을 두드렸다.
재산 내역도 모른 채 쓴 각서, "사전 포기는 무효"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작성한 재산포기각서가 법정에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대법원 판례는 이혼이 성립되기 전, 아직 구체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재산분할청구권을 미리 포기하는 약속을 원칙적으로 무효로 보기 때문이다.
부부재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해 없이 쓴 각서는 유효한 ‘재산분할 협의’가 아닌 무효인 ‘청구권의 사전 포기’로 간주될 공산이 크다.
고순례 변호사는 “재산포기 각서 작성당시 부부의 총재산이 어떤 것이 있고, 총재산가액은 얼마나되고, 부부의 기여도가 각각 얼마나되고, 그래서 부인의 몫이 얼마 정도 된다라는 것을 계산하고 포기각서를 작성했다면, 그 각서는 유효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반대로 그런 과정없이 그냥 얼마 받고 나머지 포기하는 식이었고, 나머지 재산이 받은 재산보다 훨씬 많은 경우에는 대법원판례상의 재산분할의 사전포기로 해석될 여지가 높습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단 2년의 ‘골든타임’, 놓치면 권리는 소멸
변호사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우리 민법(제839조의2 제3항)은 재산분할청구권이 이혼한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소송 등으로 중단시킬 수 없는 ‘제척기간’이므로, 이 기간이 지나면 영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2025년 4월에 이혼한 A씨는 2027년 4월 말까지 반드시 소송을 제기해야만 한다.
심규덕 변호사는 “협의이혼 후 2년 이내라면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하며, 재산포기각서가 있더라도 정당한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 후 이년 내에는 행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비록 재산포기각서를 작성하셨더라도, 당시 심리적 압박이나 불공정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합의라면 그 효력을 다툴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공증·유책사유, 결정적 걸림돌 아냐
A씨가 걱정하는 ‘공증’과 ‘유책사유’ 역시 재산분할 청구를 막는 절대적인 장벽은 아니다.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증은 해당 각서를 당사자가 직접 작성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각서의 내용 자체가 법적으로 유효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각서 내용이 법리에 어긋나거나 불공정하다면 공증 여부와 관계없이 효력을 다툴 수 있다. 김동훈 변호사는 “의뢰인께서 직접 공증에 참여하지 않으셨다면 공증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라며 공증 절차 자체의 하자 가능성도 지적했다.
또한 이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재산분할청구권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법원이 분할 액수나 방법을 정할 때 이를 참작할 수는 있지만, 권리 자체를 박탈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의 태도다.
결국 관건은 혼인 기간 동안 재산 형성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씨가 2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것을 한목소리로 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