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 나지만 미안" 보냈다가…강제추행 '자백' 될까요?
"기억 안 나지만 미안" 보냈다가…강제추행 '자백' 될까요?
술자리 후 성추행 고소, 엇갈린 진술 속 '사과 메시지'와 '목격자'의 중요성

술자리 강제추행 항의를 받은 남성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고자, “그랬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고 연락했다. / AI 생성 이미지
지인과 술을 마신 뒤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앞둔 A씨. 당시 기억이 분명치 않았지만 원만한 관계를 위해 상대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한 달 뒤, 이 메시지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자백'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기억나지 않는 일에 대한 조건부 사과가 성범죄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사과하겠다"…혐의 인정한 꼴 될까
A씨는 자택에서 여자친구와 그녀의 친구 B씨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자리에서 B씨가 먼저 A씨의 무릎에 올라타는 등 신체 접촉을 해 왔고, A씨의 여자친구가 이를 만류해 각자 방으로 돌아가 잠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B씨는 A씨가 새벽에 자신의 방에 들어와 몸을 만졌다며 강제추행을 주장했다. 기억이 나지 않던 A씨는 원만히 해결하고자 “그랬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는 취지로 연락했다.
한 달 뒤 경찰 조사를 받게 된 A씨의 가장 큰 불안은 이 사과 메시지다. 변호사들은 이런 조건부 사과가 수사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법률사무소 신임의 박교현 변호사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랬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라고 한 부분은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사과 워딩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어떻게 진술할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 역시 "사건 직후 상대방의 항의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진심으로 사과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부분은 가장 뼈아픈 실책"이라며 "수사기관은 통상 이러한 사과를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정황 증거로 불리하게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과가 곧바로 범행 자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무법인 정향 김연수 변호사는 "사과의 의미가 관계를 원만히 정리하려는 취지였는지, 실제 행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는지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사과를 하게 된 경위와 대화의 전체 맥락을 통해 혐의 인정 목적이 아니었음을 적극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격자인 여자친구, '선택적 기억' 상대방…진술 신빙성이 관건
A씨에게 불리한 정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당시 술을 마시지 않아 모든 상황을 기억하는 A씨의 여자친구와, 일부만 기억하는 B씨의 '선택적 기억'을 중요한 방어 지점으로 꼽았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술을 마시지 않아 전후 사정을 명확히 기억하는 여자친구의 존재가 핵심 열쇠"라며 "추행 전 피해자가 먼저 무릎에 올라타는 등 적극적인 이성적 행위를 유도했다는 사실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고 당시 행위의 강제성이나 고의성을 다툴 수 있는 결정적인 방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B씨는 자신이 먼저 스킨십을 시도한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새벽의 추행 피해만 주장하고 있다. 법무법인 베테랑 윤영석 변호사는 "이러한 '선택적 기억'은 고소인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공격할 수 있는 중요한 방어 포인트가 된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윤준기 변호사도 "기억이 선별적인 점은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고 덧붙였다.
경찰 조사,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변호사들은 경찰 조사에 임하기 전, 섣부른 대응보다 증거를 확보하고 진술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성범죄 사건은 초기 진술이 이후 수사와 재판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선 고소인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법무법인 KB 김태안 변호사는 "고소인에게 직접 연락하여 추가 사과를 하거나 사건에 대해 따지는 등 불리한 증거를 남길 행동을 절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행동이 2차 가해나 증거인멸 시도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하영우 변호사는 "조사 전 그날의 음주량, 방 배치, 이동 동선, 각자 잠든 시점, 여자친구 진술, 이후 카카오톡 대화, 사과 문구의 취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라"고 조언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추측해서 진술하지 말아야 한다. 로티피 법률사무소 최광희 변호사는 "조사에서는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추측해 인정하거나 부인하지 말고, 사실대로 진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변호사들이 혐의를 다투는 경우, 첫 조사부터 변호사와 동행하여 진술 방향을 조율하고 법적 조력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