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고발하니 '교도소행' 협박…피해 병사 두 번 죽인 간부
부조리 고발하니 '교도소행' 협박…피해 병사 두 번 죽인 간부
법조계 '항명 아닌 명백한 범죄'…'녹음기'에 기댄 병사, '시스템'이 답해야

선임의 괴롭힘을 고발한 병사에게 간부가 '교도소에 보낼 수 있다'며 협박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선임 괴롭힘보다 무서웠던 간부의 한마디, "내가 널 교도소 보낼 수 있다"
구원의 동아줄이라 믿고 붙잡았던 간부의 손이, 자신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손이 될 줄이야.
선임병의 가혹행위를 고발한 병사에게 '교도소에 보내겠다'고 협박한 간부의 행위에 대해 법조계는 '항명이 아닌 명백한 범죄'라고 일제히 지적했다.
구원의 손길인 줄 알았는데, 낭떠러지로 미는 손이었다
A상병에게 군 생활은 매일이 지옥이었다. 선임들은 사소한 트집으로 욕설을 퍼붓고 관물대를 걷어차는 등 폭력을 일삼았다. 그는 용기를 내 간부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온 건 침묵과 외면이었다. 조사는 흐지부지 끝났고, 가해자들은 되레 그를 비웃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국방헬프콜과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리자, 그를 보호해야 할 간부의 얼굴이 180도 바뀌었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상담실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간부는 A상병에게 "나를 걸고넘어지는 건 항명이고 상관모욕죄"라며 "마음만 먹으면 당장 국군교도소에 보낼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제복 입은 어른의 배신은 선임의 괴롭힘보다 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A상병의 심장을 찔렀다.
'항명죄'라는 올가미, 부당한 명령이었나 정당한 권리였나
과연 부조리 시정을 요구한 A상병의 행동은 '항명'일까? 법률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항명죄(군형법 제44조)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불복할 때 성립한다. 부조리를 바로잡아 달라는 요구는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 행사이지, 불복의 대상이 되는 '명령' 자체가 아니다. 이는 마치 직장인이 회사의 안전 문제를 지적한 것을 두고, 사장의 경영 방침에 반항했다며 '업무방해'로 몰아가는 것과 같은 억지 논리다.
육사 출신 박상호 변호사는 "상관모욕, 항명 등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피해자이니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부조리 신고를 상관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칼날은 거꾸로 간부에게…'교도소' 발언은 부메랑
법조계의 칼날은 오히려 해당 간부를 향했다. '교도소에 보내겠다'는 말은 상대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명백한 '해악의 고지'로, 협박죄(형법 제283조)에 해당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병사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막은 행위는 직권남용죄(형법 제123조)의 교과서적인 사례다.
이는 아파트 경비원이 관리 문제를 제기하는 입주민에게 "자꾸 그러면 엘리베이터 못 타게 막아버릴 겁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권한을 남용하는 것과 같다. 경비원의 임무는 입주민을 보호하는 것이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입주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김일권 변호사는 "명백한 협박죄이며, 직권남용 혐의도 충분히 검토될 수 있는 중대 범죄"라고 분석했다.
녹음만이 살길?…스마트폰이 아닌 시스템이 답해야
변호사들은 A상병에게 간부의 발언을 '녹음'해 증거를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군사경찰 고소와 함께 독립기구인 '군인권보호관'에게 진정을 제기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해 병사가 자신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 녹음 버튼에 목숨을 걸어야 할까. 한 병사의 용기 있는 고발을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는 문화,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지휘관의 이기심이 존재하는 한 제2, 제3의 A상병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