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건 무혐의 받았는데…피해자 이의제기 후 검찰 소환, '기소' 위해 서두르는 걸까?
9건 무혐의 받았는데…피해자 이의제기 후 검찰 소환, '기소' 위해 서두르는 걸까?
테더 거래로 보이스피싱 연루, 불기소 처분 받았지만…재수사 끝에 형사 소환장, 민사 소송장까지 날아와

가상자산 거래로 보이스피싱에 연루돼 불기소됐던 A씨가 피해자의 이의 제기로 재수사를 받게 됐다. / AI 생성 이미지
가상자산(테더) 거래에 엮여 보이스피싱 사건의 피의자로 몰렸던 A씨. 총 12건의 사건 중 9건은 내사종결됐고, 나머지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기방조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으며 사건이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초, 종결된 사건의 한 피해자가 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6개월이 넘는 재수사 끝에 사건이 갑자기 검찰로 넘어갔고, A씨는 '전기통신사기' 혐의로 검찰 출석 요구를 받았다.
심지어 검찰 수사관은 정식 조사 전에 '자료 정리를 위해 미리 방문하라'고 재촉하고, 같은 날 민사소송 소장까지 송달됐다. 불기소 처분을 뒤집고 기소하기 위해 검찰이 서두르는 것은 아닐지, A씨는 불안에 휩싸였다.
불기소 처분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6개월 만의 '기습 송치'
A씨는 테더 거래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다. 억울함을 풀고 범인을 잡기 위해 직접 고발까지 하며 수사에 협조했다.
그 결과 총 12건의 관련 혐의 중 9건은 '혐의 없음'으로 내사종결됐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사기방조 혐의 등도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피해자 중 한 명이 올해 1월 이의신청을 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6개월 넘게 이어진 재수사 끝에 사건은 최근 갑작스럽게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은 A씨에게 '전기통신사기' 혐의로 출석을 요구했다. A씨의 기존 변호사에 따르면, 이번 경찰의 송치 의견은 과거 불기소 처분을 받았던 사건들의 의견과 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전 자료 정리하러 오라"는 수사관…응해도 될까?
변호사들은 검찰 수사관의 '사전 자료 정리' 요구에 변호인 없이 섣불리 응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는 비공식적 절차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현재 변호인이 없는 상태에서 자료를 제출하거나 사실을 진술하면, 이후 불리하게 활용될 수 있다"며 "변호인 선임 전까지 출석 및 자료 제출을 거절하거나 유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신언 법률사무소 박영재 변호사 역시 "그 자리에서 말한 내용이 진술로 남아 불리하게 쓰일 수 있어, 변호사 선임 전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물론 수사 효율성을 위한 실무적 절차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법무법인 로웰 김훈희 변호사는 "조사 전 거래 내역 정리나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것 자체는 이례적이거나 위법한 절차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인 선임 후 대응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검찰 직접 조사와 재촉, '기소' 임박 신호일까?
검사가 경찰의 보완수사 지휘 없이 직접 피의자를 조사하는 것이 반드시 기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았다. 피해자의 이의제기가 있을 경우 검사가 직접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한강 고용준 변호사는 "재수사나 이의신청 사건에서는 검사가 직접 조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직접 출석 요구 자체가 비정상적인 절차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 불기소 처분을 뒤집기 위해 검사가 적극적으로 나선 신호일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왔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는 "기존 불기소 논리를 깨기 위해 검사가 직접 피의자의 진술을 듣고 허점을 찾으려는 과정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법률사무소 평정 이시완 변호사는 "경찰 송치의견이 기존 불기소 사건들과 유사하다는 점은 의뢰인에게 유리한 신호"라며 "검사가 직접 조사에 나선 것은 기소를 확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 불기소 논리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사정이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려는 절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형사·민사 동시 압박…최우선 대응은 '변호사 선임 후 시간 벌기'
변호사들은 형사 조사와 민사 소송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가장 시급한 것은 변호사를 선임한 뒤 대응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법무법인(유한) 텍스트 박종태 변호사는 "지금 당장은 검사실에 변호인 선임 절차 진행 중임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출석 및 자료 제출 일정의 연기를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형사소송법상 보장된 피의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다.
민사 소송 대응도 늦출 수 없다. 법률사무소 반석 최이선 변호사는 "민사 소송은 소장 송달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형사 방어 논리와 모순되지 않도록 답변서를 선제적으로 제출하여 불이익을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법률사무소 유 (唯) 박성현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다급한 일정 재촉에 끌려다니기보다는 변호인 선임권과 방어권을 정당하게 행사하여 충분한 준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