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의 은밀한 제안, '장부 삭제' 대가로 수백만원…알고보니 '피싱' 덫
수사관의 은밀한 제안, '장부 삭제' 대가로 수백만원…알고보니 '피싱' 덫
불안 심리 파고든 신종 피싱의 전말, 전문가들 "수사기관은 돈 요구 안 해…100% 사기"

한 달 전 방문했던 스웨디시 마사지 업소가 단속에 걸렸다며 A씨에게 걸려온 수사관 전화는 보이스피싱이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스웨디시 마사지 갔다 수백만원 뜯긴 남성, 단속 빌미 삼은 신종 피싱 수법
"한 달 전 방문했던 세종시의 스웨디시 마사지 업소가 단속에 걸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자신을 수사관이라 밝힌 남성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용은 날벼락 같았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A씨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당황한 A씨의 귀에 남성의 위협적인 말이 꽂혔다. "업소 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당신의 방문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심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로 그 불안의 틈을 사기꾼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은밀한 목소리로 "우리가 장부와 하드디스크 정보를 지워줄 수 있습니다. 그 대가로 몇백만 원을 입금하십시오"라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넸다. 이성적인 판단은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 A씨는 결국 그들이 알려준 계좌로 돈을 보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 A씨가 거래하는 은행 콜센터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그를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방금 입금하신 통장이 대포통장(사기 이용 계좌)으로 의심됩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사기였음을 직감한 A씨는 분노에 차 사기범의 번호를 차단했다. 그러자 차단된 문자함에는 "알아서 해라", "민사건에도 알아서 하라"는 조롱 섞인 협박 메시지만이 쌓여갔다.
수사관이 돈을?… 100% 사기, 현실에선 불가능한 시나리오
A씨가 겪은 일, 과연 실제 단속과 연관이 있을까. 법률 전문가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기'라고 단언한다. 수사기관이 증거 삭제를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윤영석 변호사는 "실제 단속에 걸렸다면 수사기관은 현장에서 장부나 하드디스크 등 모든 증거물을 즉시 압수한다"며 "민간인이든 수사관이든 이를 돈을 받고 지워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기범들이 마사지 업소 고객 정보를 해킹해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돌리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분석이다.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 '지급정지'가 피해 막는 유일한 길
이미 돈을 보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속도'가 생명이라고 입을 모은다. 피해를 인지한 즉시 경찰(112)이나 금융감독원(1332)에 신고하고, 돈을 보낸 사기 이용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요청하는 것이 급선무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금융사가 해당 계좌를 동결하면, 금융감독원은 채권소멸절차를 개시해 계좌에 남은 돈을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다. 윤영석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돈을 찾으려면 빠른 움직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망설이지 말고 고소 및 지급정지 요청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혹시 진짜 수사 대상이면?"… 사기 피해 구제가 먼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약 실제 성매매 혐의로 수사가 개시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남을 수 있다. 일부 변호사는 초범일 경우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를 목표로 대응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압도적 다수의 전문가는 현재로서는 사기 피해 구제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선을 긋는다.
법률사무소 필승의 김준환 변호사는 "기재된 내용을 볼 때 실제 수사대상이 된 상황은 아니며, 금전 편취를 목적으로 한 사기"라며 "만일 추후 경찰로부터 진짜 연락이 온다면 그때 변호사와 대응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사기범들이 보낸 협박 문자 역시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이는 신고를 막으려는 명백한 2차 범죄(협박죄, 공갈죄)다. 해당 문자도 증거로 보존해 수사기관에 함께 제출해야 한다.
한순간의 불안감을 파고든 사기꾼의 목소리. 공공기관이나 수사기관을 사칭하는 전화는 일단 의심하고, 해당 기관의 공식 대표번호로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습관만이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