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집주인은 유령, 내 보증금은 누가 책임지나?
바뀐 집주인은 유령, 내 보증금은 누가 책임지나?
연락두절 새 집주인, '승계 거부'로 전 주인에게 돈 받는다

전세사기가 의심되는 집주인으로 변경돼 보증금 반환이 불안하면, 임차인은 임대인 변경을 안 날로부터 상당 기간 내에 승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어느 날 집주인이 99년생으로 바뀌었다. 서류 한 장 안 주는 유령 집주인에 HUG 보증도 막힐 위기.
법률 전문가들은 임대인 변경을 안 날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승계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면, 계약을 해지하고 전 주인에게 보증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조언한다.
전세사기 의심 정황 속에서 내 보증금을 지키는 법적 대응법을 알아본다.
"집주인이 바뀌었습니다"…등기부엔 99년생, 전화는 중년여성
2025년 7월, HUG 보증보험과 은행 대출을 이용해 서울 강서구에 전셋집을 구한 A씨. 평온하던 그의 일상은 2026년 2월 25일, 권리 대행업체로부터 받은 한 통의 연락으로 송두리째 흔들렸다. 집주인이 바뀌었으니 새 임대인의 이름과 연락처를 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이때 처음으로 집주인이 변경된 사실을 알게 됐다. 부랴부랴 국민은행과 HUG에 문의하자 "임대인 정보 변경을 위해 새 전세계약서나 매매계약서가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현 임대인은 매매계약서 제공을 꺼리며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등기부등본에 적힌 새 집주인은 99년생인데, 정작 전화를 받는 사람은 중년 여성이었다.
등기부상 집주인의 연락처를 요구해도 계속 거부당했다. HUG는 "임대인 정보가 변경되어 있지 않으면 보증금을 지불하는 게 불가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A씨는 전세 만기 시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판례가 인정한 '비상 탈출구', 임대차 승계 거부권
원칙적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집이 팔리면 새 주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하지만 법원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예외를 인정한다. 바로 '임대차 승계 거부권'이다.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8. 9. 2.자 98마100 결정)는 임차인이 원하지 않으면 임대인 지위 승계를 거부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A씨처럼 새 집주인의 신원이 불분명하고 보증금 반환이 불확실해 보이는 경우, 이 권리를 행사할 정당한 이유가 된다.
신은정 변호사(로버스 법률사무소)는 "임대인 변경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현시점에서는 '임대차계약 승계 거부'를 통한 계약 해지가 충분히 가능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승계를 거부하면 임대차 계약은 전 주인과 관계에서 해지되고, 보증금 반환 의무 역시 전 주인에게 돌아간다(대법원 2002. 9. 4. 선고 2001다64615 판결).
"골든타임 놓치면 끝"…내용증명부터 발송하라
승계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골든타임'을 지켜야 한다. 법원은 집주인이 바뀐 사실을 '안 날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 이 '상당한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가능한 한 빨리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확실한 첫 조치는 '내용증명' 발송이다. 강대현 변호사(법무법인 도모)는 "변호사를 통해 전 임대인과 현재 등기부상 임대인 모두에게 보증보험 승계 협조 및 임대차 승계 거부 의사를 담은 내용증명을 발송하십시오. 이는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서 강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라고 조언했다.
내용증명에는 임대인 변경을 인지한 시점, 새 임대인의 비협조로 보증보험 갱신이 막힌 상황, 이로 인해 신뢰가 깨져 승계를 거부하고 계약을 해지한다는 뜻을 명확히 담아야 한다.
전형적인 전세사기 수법?…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다수의 변호사들은 A씨의 사례가 전형적인 전세사기 수법일 가능성을 경고했다.
장휘일 변호사(더신사 법무법인)는 "새로운 임대인의 인적 사항이 등기부와 다르고, 연락을 회피하며, 매매계약서 제출을 거부한다면, 보증금 반환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라고 진단했다.
김상수 변호사(법무법인 선린)는 "특히 등기부상 소유자(99년생)와 실제 연락을 받는 중년 여성이 다르다는 점은 전형적인 '가장 임대인' 활용 사례나 전세 사기의 징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승계 거부권을 행사함과 동시에, 전 임대인의 재산 상태를 파악하고 HUG와 은행에 현 상황을 알려 보증 효력을 유지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임차권등기명령 등 추가 법적 조치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안인 만큼, 부동산 분쟁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와 상담해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