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문이 왜 거기서 나와?"…화장품 가게 절도범 몰린 시민의 항변
"내 지문이 왜 거기서 나와?"…화장품 가게 절도범 몰린 시민의 항변
물건에서 나온 지문 하나로 절도 용의자 된 사연…법률 전문가들 "지문만으론 유죄 안돼, CCTV가 관건"

한 화장품 가게의 도난당한 물건에서 A씨 지문이 나왔다며 형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경찰 "CCTV 있다" vs 당사자 "기억도 안 나"…'지문 딜레마', 유무죄 가를 결정적 증거는?
어느 날 형사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화장품 가게 절도 사건 용의자로 특정됐으니 경찰서로 오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평소 자주 가던 매장에서 발생한 절도 사건, 경찰이 내민 유일한 증거는 도난된 물건에서 나왔다는 그의 지문이었다.
A씨는 매장에 갔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는 "자주 가던 곳이라 물건을 만져봤을 순 있지만, 훔친 적은 결코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A씨의 사례처럼, 지문 하나만으로 범죄 혐의를 받게 된 시민들의 법률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지문은 그 자체로 유죄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 있을까.
"내 지문이 도둑의 증거?"…법의 심판대에 선 '정황증거'
결론부터 말하면, 지문 하나만으로 절도죄가 성립되기는 어렵다. 김경태 변호사(김경태 법률사무소)는 "지문은 범행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정황증거일 뿐, 절도 행위 자체를 증명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누구나 드나드는 화장품 매장이라면, 정상적인 쇼핑 과정에서 지문이 남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CCTV 영상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형진 변호사(법률사무소 명중)는 "영상 속 인물이 질문자가 아니라는 점을 적극 반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영상에 절도 장면이 명확히 찍혔는지, 그 인물이 A씨와 동일 인물인지가 유무죄를 가를 핵심이라는 의미다.
실제 판례에서도 지문 증거의 한계는 명확히 드러난다. 제주지방법원은 차량 문손잡이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나왔음에도, 차량 내부에 침입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제주지방법원 2022고단1343).
"무죄는 내가 증명하는 게 아니다"…검사에게 던져진 '입증 책임'
A씨는 "영상 속 인물이 내가 아니란 걸 직접 증명해야 하냐"고 물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형사소송의 대원칙상 범죄 사실을 증명할 책임은 전적으로 수사기관과 검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역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고 판시한다. 즉, 유죄의 의심이 들더라도, 검사가 이를 완벽히 증명하지 못하면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 판단해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A씨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의무는 없다.
알리바이를 찾아라…억울함 벗어줄 '결정적 한 방'
그렇다면 A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변호사들은 '알리바이 확보'가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임현수 변호사(법무법인 쉴드)는 "사건 당일 위치를 증명할 휴대폰 위치정보, 교통카드 기록,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사람의 진술 역시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찰 조사에서의 초기 대응이다. 이진채 변호사(법률사무소 가호)는 "기억을 기반으로 사실관계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섣부른 추측성 진술을 경계했다. 기억이 불분명한 사실에 대해 단정적으로 답변하는 것은 피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CCTV 영상 등 객관적 증거를 확인하며 진술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물건에 남은 지문 하나가 평범한 시민을 하루아침에 절도범으로 몰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법의 저울은 생각보다 정교하다. 억울한 혐의를 받았다면 당황하지 말고, '입증 책임은 상대에게 있다'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객관적 증거로 차분히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