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는 있고 사진은 없다? 불법촬영 혐의의 진실
녹취는 있고 사진은 없다? 불법촬영 혐의의 진실
압수수색 영장 속 '알몸 사진'과 '자백 녹취'…정황증거만으로 유죄 될까

전 여자친구를 불법 촬영한 혐의로 수사받는 A씨. 사진 원본은 삭제했지만 범행을 시인하는 듯한 녹취 파일이 증거로 제출됐다. / AI 생성 이미지
"그냥 남기려고 찍었다. 미안하다." 전 여자친구를 불법 촬영한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A씨의 발목을 잡은 건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 파일이었다.
A씨는 관련 사진을 모두 지웠다고 확신하지만, 압수수색 영장에는 범죄 혐의가 명확히 적시됐다. 결정적 물증인 사진 원본이 없는 상황, 과연 정황증거만으로 성범죄 유죄 판결이 내려질 수 있을까? 변호사들의 엇갈리는 조언 속 A씨의 운명을 가를 쟁점을 짚어본다.
"잠든 틈 타 알몸 촬영"…영장에 찍힌 낙인
사건의 시작은 집으로 들이닥친 수사관들이 내민 압수수색영장이었다. 영장에는 A씨를 피의자로 만드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피해자는 현재 자신이 잠이 든 틈을 이용하여 피의자가 알몸상태의 자신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였다고 진술하고 있고, 피의자의 아이패드에 저장된 자신의 알몸상태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 및 피의자가 범행을 시인하는 녹취파일을 제출하고 있는 등 범죄혐의 정황이 인정된다".
A씨는 이미 휴대전화와 아이패드를 모두 압수당한 상태에서, 피해자가 어떻게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는지 의문에 휩싸였다.
JY법률사무소 이종민 변호사는 "피해자는 자신의 알몸 사진을 피의자가 '휴대폰'으로 촬영하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이고, 질문하신 부분은 피해자가 상담자의 아이패드에 있는 사진을 열어놓고 이를 자신이 찍어 증거사진으로 제출한 내용으로 이해됩니다"라고 분석했다.
결국 아이패드 포렌식을 통해 원본 사진이 복원되느냐가 사건의 향방을 가를 핵심 열쇠가 된 셈이다.
"'그런 사진'이 '나체 사진'은 아니다" 항변, 통할까
A씨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범행을 시인하는 듯한 녹취 파일이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그런 사진을 왜 찍은 거야?"라는 전 여자친구의 물음에 "그냥 남기려고 찍었다. 미안하다"라고 답했던 상황을 기억해냈다.
A씨는 이 대화가 '나체 사진' 촬영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어 한다. 이불을 덮고 있어 얼굴과 어깨만 나온 일상적인 사진이었다는 것이다.
캡틴법률사무소 홍성환 변호사는 "'그런사진'이 '나체사진'이라고 동일하게 해석되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주장해야 합니다"라며 "여자친구가 자면서 입을 벌리고 자거나, 웃긴 표정을 짓거나 등 일상생활에서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부분을 찍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홍 변호사는 A씨의 변론 계획에 대해 "의뢰인이 예정하고 있는 변론의 방향은 얼추 맞지만 그 디테일이 부족하고, 경찰의 간단한 유도신문만으로도 파훼될 것들이 대다수입니다"라며 섣부른 개인적 대응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포렌식 0건'의 희망 vs '삭제해도 복구된다'는 경고
A씨는 10월 말 휴대전화를 교체하기 전 여자친구와 관련된 사진을 모두 삭제하고 휴지통까지 비웠다고 하며, 포렌식 결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직접 증거는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디지털 증거의 세계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신의 박지영 변호사는 "의뢰인께서 촬영물을 삭제하여 증거가 없다고 확신하더라도 포렌식 수사과정에서 복구 될 수도 있습니다"라며 "무혐의(무죄)를 주장하고자 하신다면, 변호사를 선임하여 포렌식 절차에 입회하여 실제 증거물이 복구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A씨 스스로 "애플 기기간의 연동문제로 인해 아이패드에서는 휴지통에 남아있어 그 사진을 보게된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아이패드 포렌식에서 결정적 증거가 나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뒷받침한다.
무혐의 vs 괘씸죄… 변호사들의 엇갈린 조언
물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A씨는 무죄를 다툴지,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할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법무법인(유) 에스제이파트너스 옥민석 변호사는 정황증거만으로도 기소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촬영물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라면, 사건 초기부터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잘 대응한다면 무혐의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적극적인 다툼의 실익이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섣부른 부인은 '괘씸죄'로 이어져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법무법인 리버티 김지진 변호사는 "혐의를 부인할 수 없는 사건인데 혐의를 부인하면, 추후에 가중처벌 등 괘씸죄 양형 반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경고했다.
법률사무소 필승 김준환 변호사 역시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경우 n번방 사건 이후로 처벌수위가 매우 높아져, 최근에는 초범이어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며 높아진 처벌 수위를 고려한 신중한 대응과 피해자와의 합의 노력을 강조했다.
결국 포렌식 결과와 녹취록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A씨의 운명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