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성추행' 고소장, 변호사들 "괜찮지만, 이대로는 위험"
'만취 성추행' 고소장, 변호사들 "괜찮지만, 이대로는 위험"
'문제없다'는 말에 숨은 함정…죄명부터 디테일까지 바로잡아야

만취 상태 성추행 피해를 고소할 때, 법률 전문가들은 죄명을 '준강제추행'으로 바로잡고 진술의 구체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 AI 생성 이미지
만취해 잠들었다가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직접 작성한 고소장을 본 법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괜찮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모순된 경고를 보냈다.
죄명 선택부터 진술의 구체성, 증거 싸움까지.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성범죄 사건에서,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과 문맥이 어떻게 유무죄를 가르는지 변호사들의 날카로운 조언을 통해 짚어본다.
"'강제추행' 아닌 '준강제추행', 첫 단추부터 바로잡아야"
피해자 A씨는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벌어진 추행을 '강제추행'으로 보고 고소장을 준비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사건의 첫 단추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폭행이나 협박이 아닌, 술에 취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를 이용한 범죄는 '준강제추행'이라는 것이다.
JY법률사무소 이종민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강제추행이라기보다는 준강제추행으로 죄명을 잡으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라며 "준강제추행은 피해자의 심신상실상태(술에 취해 깊이 잠든 상태)를 이용하여 추행의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필승의 김준환 대표변호사는 이를 "성범죄 중 중범죄에 속하여 초범이어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말하며 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강조했다.
"문제없지만, 부족하다"…진술의 '디테일'이 관건
변호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두 번째 문제는 '구체성 부족'이었다. A씨의 고소장 초안에 대해 다수의 변호사들은 '문제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유죄 입증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상세한 묘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 가림 이용수 변호사는 "문제될 부분은 없습니다만, 필요한 고소사실 중 상당 부분이 누락되어 있습니다"라고 지적하며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어느 부위로 얼마의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세기로 하였는지, 기척은 어떻게 내었는지...기억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도 모두 적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시우 김연수 변호사 역시 "강제추행의 성립요건은 들어 있지만, 신빙성이 부족합니다"라며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어야 유죄를 받아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가해자 혐의를 입증할 핵심 열쇠는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이런 성범죄 사건의 경우 어느 쪽의 진술이 더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는지에 따라 사건의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라며 진술의 신빙성이 재판의 향방을 가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입증이 더 문제"…증거 없는 싸움, '신빙성'으로 돌파해야
성범죄 고소의 가장 큰 현실적 난관은 '증거'다. 법무법인 뿌리깊은나무 김영삼 변호사는 "사실부분은 위와 같이 작성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입증방법이 더 문제입니다"라며 "증인이나 증거가 있어야 하고, 만약 없으면 고소하더라도 상당히 어려워집니다"라고 현실을 짚었다.
직접 증거가 없다면,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무기가 된다. 이때 진술의 힘을 더해 주는 것이 바로 정황 증거다.
법무법인 랜드마크 양지인 변호사는 "목격자 진술, 카카오톡 메시지 등 도움이 될 만한 것이면 좋습니다"라며 작은 단서라도 확보할 것을 권했다.
결국 관건은 가해자의 부인과 반격 속에서 어떻게 진술의 신빙성을 지켜내느냐다. 검사 출신인 서아람 변호사는 "성범죄의 경우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매우 정밀하고 꼼꼼하게 따지게 되므로, 고소대리인이 있는 편이 송치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라며 법률 전문가 조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선, '문제없다'는 말에 안주하지 말고, 무너뜨릴 수 없는 '진술의 성'을 쌓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