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혐오시설' 숨긴 공인중개사, 가계약금 돌려줘야 할까
집 근처 '혐오시설' 숨긴 공인중개사, 가계약금 돌려줘야 할까
거대 발전소 숨긴 중개사·매도인
'고지의무 위반' 법적 심판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설레는 마음으로 보낸 가계약금, 하지만 꿈에 그리던 보금자리가 거대한 발전소 바로 옆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 매수인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악몽으로 변했다. 이 사연이 매도인과 중개사의 ‘고지의무’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법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5년 10월, A씨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평생소원이었던 아파트 매매를 위해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비 오는 늦은 밤에 집을 둘러봤을 때는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A씨는 거실 창문에서 불과 100~200m 떨어진 곳에 거대한 열병합 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했다. 전문가인 중개사와 매도인 누구도 이 핵심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A씨가 즉시 가계약금 환불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불가능하다'는 차가운 답변뿐이었다.
'혐오시설' 쏙 뺀 핵심 정보 은폐…단순 변심 아니다
매도인과 중개사는 A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 명시된 "계약금 일부 입금 시 계약체결 성립이며 매수인은 입금액을 포기하고 계약 해지함"이라는 위약금 조항을 근거로 '단순 변심'이라며 환불을 거부했다.
하지만 A씨의 주장은 억울하다. 열병합 발전소는 소음, 대기오염, 그리고 무엇보다 집값 하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혐오시설' 또는 '기피시설'이다.
이는 매매 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A씨는 "비 오는 밤이라 발전소가 보이지 않았고, 전문가인 중개사가 당연히 알려줄 것이라 믿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매도인과 중개사가 계약의 중요한 요소인 '혐오시설' 존재를 알리지 않은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여부다.
법률 전문가들 "명백한 '고지의무 위반', 계약 자체가 '취소'된다"
이 사연을 접한 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가계약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입을 모은다. 핵심 근거는 매도인과 중개사의 '고지의무' 위반이다.
공인중개사법 제25조는 중개사가 중개대상물의 상태, 입지, 환경조건 등을 매수인에게 성실하고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대섭 변호사는 "상대방이 알았더라면 거래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 사전에 알릴 의무가 있다"며 "이를 숨긴 것은 명백한 고지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A씨가 민법상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주장할 수 있다는 점을 조언한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기대하고 계약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중요 부분의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계약이 '해지'가 아닌 '취소'가 되면 계약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일, 즉 '무효'가 된다. 오지영 변호사는 "유해시설의 존재는 계약의 중요한 부분에 관한 착오에 해당하며, 매수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계약이 무효가 되면 매도인은 법적 원인 없이 보유하게 된 가계약금을 '부당이득'으로 A씨에게 반환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가계약금 포기' 문자, 중대 하자로 인한 '취소' 앞에서는 무력화
그렇다면 매도인 측이 주장하는 '가계약금 포기'를 담은 문자 상의 위약금 조항은 어떻게 될까?
법률 전문가들은 계약 자체가 고지의무 위반이나 착오 등 중대한 하자로 인해 '취소'될 경우, 해당 위약금 조항 역시 효력을 잃는다고 분석한다. 계약의 성립을 전제로 하는 위약금 조항이, 계약이 원천 무효가 되는 상황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논리다.
김상수 변호사는 "단순 변심이 아닌, 중개대상물의 핵심적 하자에 대한 고지의무 위반을 근거로 하므로 계약 취소 및 가계약금 전액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소송 전 해결'의 결정적 무기: '내용증명'으로 법적 근거 제시하라
변호사들은 A씨에게 소송에 앞서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것을 가장 먼저 조언한다.
내용증명에 매도인과 중개사의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이를 근거로 계약을 '취소'한다는 점, 그리고 가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내용을 법리적으로 명확히 담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현 변호사는 "상대방도 법적 다툼으로 갔을 때 본인들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내용증명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A씨는 가계약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거나 관할 구청에 공인중개사의 의무 위반을 신고하는 등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