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함정 질문', 혐의 부인하니 조서엔 '자백'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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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함정 질문', 혐의 부인하니 조서엔 '자백' 둔갑

2026. 04. 10 11:39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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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왜곡, 반말 묘사…변호사들 “서명 거부하고 즉시 이의제기해야”

금융범죄 피의자가 수사관의 함정 질문과 진술 왜곡으로 혐의를 인정한 것처럼 조서가 작성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 AI 생성 이미지

2억 원대 금융범죄 혐의로 조사받던 피의자가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수사관이 교묘하게 설계한 ‘함정 질문’에 넘어가 조서에는 혐의를 인정한 것처럼 기록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수사관은 사건과 무관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거나, 피의자가 반말을 한 것처럼 상황을 꾸며 조서에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 전문가들은 “진술 왜곡은 방어권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조서 날인을 거부하고, 이미 서명했다면 즉시 의견서를 제출해 부당하게 작성된 기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바닥 보며…” 소설 쓰듯 작성된 조서, 답변은 ‘예’ 한 글자로 왜곡


금융범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A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A씨 계좌에 오간 돈을 전부 합산해 혐의 금액을 2억 원에서 40억 원까지 부풀렸다.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은 A씨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700억대 사기사건을 자기가 검거한 자랑'을 늘어놓더니, A씨가 “관심 없습니다”라고 답한 내용까지 조서에 기재했다.


A씨는 “내가 만약 폭행사건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데 뜬금없이 폭행치사에 관한 걸 물어서 그걸 답변했더니 그 내용을 조서에 적으면, 나한테 맞은 피해자가 맞고 죽었다고 당연히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항의했지만, 수사관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서 작성 방식은 더 심각했다. A씨가 반말로 답한 적이 없음에도 조서에는 “문: 왜 그런 건 가요? 답: (바닥을 보며)~~때문에.”와 같이 마치 소설 대본처럼 상황을 묘사하며 반말을 한 것처럼 기록됐다.


특히 수사관은 10줄이 넘는 긴 질문 중간에 혐의 인정 여부를 교묘하게 섞어 질문했다. A씨가 “행위 자체는 인정하지만 혐의는 부인합니다”라는 취지로 ‘예’라고 답하자, 조서에는 단 한 글자 ‘예’만 적혔다. A씨의 수정 요구는 모두 묵살됐다.


조서 날인 전 ‘골든타임’…“내용 다르면 서명 거부해야”


변호사들은 피의자신문조서에 서명하기 전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사실과 다른 부분은 반드시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수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서명과 날인을 거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응 방법이다.


남천우 변호사(법무법인 쉴드)는 “경찰에서 작성하는 피의자 신문 조서는 의뢰인이 그 내용과 취지를 모두 인정할 때만 향후 재판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기재된 부분에 대해서는 조서 열람 시 서명과 날인을 거부하거나 수정을 강하게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수사관이 정당한 수정 요구를 거부한다면, 그 사실 자체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이동규 변호사(법무법인 대한중앙)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수정 거부 시 '해당 부분 사실과 다름'이라고 기재”할 것을 주문하며, “서명 전까지 절대 날인하지 않기”를 당부했다.


이미 서명했다면? “즉시 의견서 제출해 바로잡아야”


이미 조서에 서명과 날인을 마쳤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최대한 빨리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해 조서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진술 취지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윤석 변호사(제로변호사)는 “교묘한 질문으로 혐의 부인 취지를 단답형 자백으로 왜곡하거나 무관한 사건을 기재한 것은 향후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라며 “조사 당시의 정확한 상황과 의뢰인의 진짜 답변 취지를 담은 '의견서'를 신속히 제출하여 기록을 바로잡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우선 조서 내용을 정확히 확보해야 한다. 권민정 변호사(법률사무소 민앤정)는 “지금이라도 정보공개청구로 내용 확인해서, 아닌 부분은 적극적으로 소명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고, 류제형 변호사(서울종합법무법인) 역시 “지체없이 의견서 제출을 통해 경찰조서 내용의 부당함을 지적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강조했다.


부당 수사, 법정에서 증거능력 다툴 수 있어


이러한 수사관의 부당한 행위는 단순히 억울함을 넘어, 향후 재판에서 조서의 증거능력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3항은 경찰 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인정해야만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완 변호사(법률사무소 평정)는 “현행법상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공판에서 그 내용을 인정해야만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라며 “지금 조서에 서명하지 않았거나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있다면, 검찰 및 재판 단계에서 해당 조서의 증거능력 자체를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라고 설명했다.


최이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반석) 또한 “10줄이 넘는 긴 질문 속에 혐의 인정 내용을 섞어 넣고 단답형 답변을 유도한 것은 전형적인 '유도 및 복합 질문'으로 그 신빙성을 다툴 여지가 큽니다”라고 지적했다.


수사관의 편파적 태도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되면 수사관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다.


홍윤석 변호사는 “수사관의 태도가 편파적이고 객관성을 상실하였으므로, 청문감사관실을 통해 수사관 기피 신청을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부당한 조서 한 줄이 사건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만큼, 형사사건 초기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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