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된 증거, 양육권 재판 뒤집나
'투명인간' 된 증거, 양육권 재판 뒤집나
법원엔 없는 서류, 조사관 손에만…'절차 위반'이 상고심 열쇠

양육권 소송 상고심을 앞둔 부모가 상대방이 가사조사관에게만 '비밀 서류'를 보여줘 위기에 처했다. / AI 생성 이미지
양육권 소송의 마지막 관문인 대법원 상고심을 앞두고, 상대방이 법정에는 제출하지 않은 채 가사조사관에게만 몰래 보여준 '비밀 서류' 때문에 아이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는 한 부모의 호소가 제기됐다.
재판의 공정성을 뒤흔드는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명백한 '방어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를 다툴 수 없는 상고심의 특성상, '억울하다'는 감정적 호소를 넘어 '기록으로 증명된 절차 위반'을 입증하는 것만이 유일한 역전의 카드라고 강조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내용으로 조사를…”
양육권 분쟁으로 대법원 문턱까지 가게 된 A씨. 소송 과정에서 A씨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들을 법원에 정식으로 제출하지 않고, 가사조사관에게만 보여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A씨는 “제가 알지도 못하는 내용들로 대면조사를 했는데요”라며, 상대방이 제시한 '비밀 자료'의 존재조차 모른 채 일방적인 조사를 받아야 했던 억울함을 토로했다. 심지어 당시 가사조사관이 상대방에게 “법원에 제출하라”고 말했지만, 상대방은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이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가사조사 보고서에 관련 증거가 전혀 첨부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확인한 A씨는 “모든 증거가 공평하게 공개돼야 되는 게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며, 재판의 공정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 눈 가리는 '비공식 브리핑'…왜 문제인가?
법률 전문가들은 상대방의 행위가 재판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사조사관은 법원의 명을 받아 가정환경 등 사실관계를 조사하는 전문가지만, 조사관에게 자료를 보여주는 것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모든 증거는 법정에서 공개되고, 상대방에게 반박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핵심 원칙이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에 제출되지 않은 자료가 조사관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그대로 재판부의 판단으로 이어졌다면 이는 한쪽 선수의 눈을 가리고 권투 경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A씨가 자신의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기회 자체가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는 의미다.
상고심의 좁은 문…'절차 위반'을 증명하라
문제는 A씨의 사건이 이미 상고심에 있다는 점이다.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새로 따지는 곳이 아니라, 원심판결에 법리 오해나 중대한 절차 위반이 있었는지를 심리하는 '법률심'이다. 따라서 변호사들은 “상대방이 자료를 숨겼다”는 식의 감정적 호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해답의 김무룡 변호사는 “상고심은 새 증거를 다시 다투는 단계가 아니어서, 기록상 남아 있는 절차위반과 방어권 침해를 어떻게 특정하느냐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즉, '상대방의 주장이 틀렸다'가 아니라 '미제출 자료를 기초로 판단해 반박 기회를 주지 않은 절차가 위법하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도모의 김강희 변호사 역시 “기록에 현출되지 않은 자료가 조사 및 판단의 기초가 되었고, 이에 대한 반박 기회가 없었다는 구조로 쓰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역전의 열쇠, '기록' 속에 있다
결국 A씨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기록'뿐이다. 전문가들은 A씨가 직접 '기록 탐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법원에 있는 모든 사건 기록을 열람·복사해, 상대방이 다른 소송에서 제출했던 '비밀 자료'와 가사조사보고서, 증거목록 등을 낱낱이 대조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① 가사조사관이 비공식 자료를 토대로 질문한 정황 ② 조사보고서에는 내용이 반영됐으나 법원 기록에는 없는 증거의 존재 ③ 그로 인해 A씨의 반박 기회가 실질적으로 박탈되었다는 사실을 연결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야 한다.
디센트 법률사무소 임호균 변호사는 이를 근거로 상고이유 보충서 등을 통해 “방어권 침해, 심리미진, 채증법칙 위반 취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의 공정성이라는 대원칙이 '보이지 않는 증거'에 의해 훼손된 이번 사건의 상고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