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 자식과의 상속 분쟁, 변호사 선임이 독이 될까
전처 자식과의 상속 분쟁, 변호사 선임이 독이 될까
감정싸움 피하려다 소송 휘말릴라…전문가들의 해법은

배우자 사후 전처 자녀와 상속 재산 분할 시 감정 대립이 심하다면 변호사를 통해 객관적 합의안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 AI 생성 이미지
"시작부터 변호사님이 접근하면 너무 일이 커지고 왜곡될 것 같아 고민입니다." 배우자 사후, 전처의 자녀와 상속 재산을 나눠야 하는 A씨. 감정의 골이 깊어 직접 마주하기는 두렵지만, 변호사를 내세우면 오히려 판이 커질까 노심초사한다.
국적을 상실한 자녀까지 얽힌 이 복잡한 상속 문제에 전문가들은 변호사를 '완충제'로 삼되, 접근 방식과 시점을 신중히 조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직접 연락이냐, 변호사 대리냐…'감정'이 가른 첫 단추
상속 협상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울지는 A씨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전처 자녀들과의 해묵은 감정 때문에 직접 연락은 망설여지지만, 처음부터 변호사가 나서면 상대방이 방어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수의 법률 전문가는 감정 대립이 클수록 법률 대리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홍윤석 변호사(제로)는 "전처 자녀분들과 감정의 골이 깊은 상태라면 당사자 간 직접 연락은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라며 "변호사를 통해 객관적인 합의안을 정중하게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감정적 충돌을 막고 원만한 조율을 이끄는 데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이민철 변호사(법무법인 우선) 역시 "변호사가 제삼자의 위치에서 정중하고 건조한 어투로 합의안을 공식 제안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유도하는 훌륭한 완충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초기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장우진 변호사(법무법인 한강 파트너스)는 "1차 연락은 직접 하시는 것이 관계 악화를 줄이는 데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라면서도, 변호사가 처음부터 나서면 "상대방이 방어적 태도를 취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법무사는 서류, 변호사는 협상…'업무 분담' 가능할까?
A씨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협의서 작성은 법무사, 협상 연락은 변호사'에게 맡기는 방안도 고려했다. 이는 법적으로 가능한 선택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역할 분담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한병철 변호사(법무법인대한중앙)는 "협의서 작성은 법무사, 협상 및 분쟁 대응은 변호사가 담당하는 방식도 실무상 가능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법률 분석 자료 역시 해당 방식이 "법적으로 가능하고 실무적으로도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명시했다.
다만, 법무사가 '협상' 자체를 대리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송인혁 변호사(법무법인 헌정)는 "법무사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 작성은 가능하나, 상대방과의 협의 교섭을 대리하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보수를 받고 법률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무적으로는 업무 분담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진훈 변호사(법무법인 쉴드)는 "협의서 작성과 교섭 연락을 분리하는 것보다, 변호사에게 처음부터 일관되게 맡기는 것이 혼선을 줄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민철 변호사 또한 비용이 이중으로 들고 대응의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어, 분쟁 가능성이 있다면 변호사에게 일괄 위임하는 편을 추천했다.
상대가 먼저 움직일 때…'주도권' 잡는 골든타임
상대방이 먼저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할 정도로 행동력이 빠르다는 점은 A씨를 불안하게 만든다. 가만히 있다가는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상대방의 빠른 움직임이 오히려 이쪽의 행동 개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홍윤석 변호사는 "방치하실 경우 상대방이 먼저 상속재산분할심판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상속재산분할심판이란, 상속인 간 협의가 불발될 경우 법원에 재산 분할을 청구하는 절차다.
따라서 마냥 기다리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다. 한병철 변호사는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권리 행사를 하는 성향이라면 먼저 정리된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라며 선제적 대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국적을 상실한 상속인이 포함된 경우는 더욱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이민철 변호사는 "외국 국적자가 협의에 동의하여 향후 상속 등기를 진행하려면 현지 공증이나 아포스틸 등 매우 복잡한 서류 절차가 수반되어야 합니다"라며, 처음부터 전체 절차를 매끄럽게 설계해야 불필요한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섣부른 감정적 대응보다 전문가와 함께 판을 짜고 선제적으로 협상에 나서는 것이 소송을 피하고 내 몫을 지키는 현명한 길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