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중 택시와 '쿵', 400m 더 가다 멈췄는데…이거 뺑소니인가요?
음주운전 중 택시와 '쿵', 400m 더 가다 멈췄는데…이거 뺑소니인가요?
민형사 합의 마쳤어도 '도주 의사'가 핵심 쟁점…초범이라도 경찰 조사 앞두고 불안

음주운전 접촉사고 후 수백 미터를 더 주행해 뺑소니 위기에 처한 운전자는 '도주 의사'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다. / AI 생성 이미지
A씨는 최근 음주 상태로 운전하다가 택시와 부딪히는 사고를 냈다. A씨 차량의 조수석과 택시의 왼쪽 뒷좌석 범퍼가 충돌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A씨는 충돌 직후 바로 멈추지 않고 300~400m가량을 더 주행한 뒤에야 차를 세웠다. 이후 음주 측정과 간단한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피해 택시기사와 민사상, 형사상 합의는 모두 마쳤지만, 경찰 조사 출석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살면서 처음 받는 조사에 덜컥 겁이 났다. 특히 택시기사가 “충돌 후 300~400미터를 그대로 달렸다”고 진술한 부분이 '뺑소니'로 몰릴까 걱정이다. A씨는 정말 뺑소니범으로 처벌받게 될까?
사고 후 400m 주행…택시기사는 “뺑소니” 주장
A씨는 최근 음주운전 중 택시와 접촉사고를 냈다. 이후 300~400m를 더 이동하다가 정차했고, 현장에서 음주 측정과 조사를 받았다. 호흡 측정 대신 혈액 채취(채혈)를 요청한 A씨는 조만간 정식으로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A씨는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까지 마쳤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택시기사가 경찰에 A씨가 사고를 내고도 멈추지 않고 수백 미터를 달아났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시 인지부조화가 와서 당황했을 뿐, 도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초범인 데다 첫 경찰 조사라 어떻게 진술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도주 의사' 없었다는 점, 어떻게 증명하나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히 사고 후 수백 미터를 이동했다는 사실만으로 뺑소니(도주치상) 혐의가 단정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는 운전자가 ‘도주할 고의’를 갖고 현장을 벗어났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진다.
변호사들은 '왜 즉시 멈추지 못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는 “단순히 당황했다는 호소에 그치기보다는, 차량 통행량이 많아 안전한 갓길을 찾으려 했던 것인지 등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도 “‘안전하게 차를 세울 곳을 찾다 보니 수백 미터를 지나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야 한다”며 “누군가에게 잡힌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차량을 멈추고 조사에 응했다는 점을 반드시 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주가 목적이었다면 아예 현장을 떠났을 것이라는 논리다.
뺑소니와 '사고 후 미조치', 처벌 수위도 다르다
사고 후 현장을 벗어났다고 모두 같은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다쳤는지에 따라 죄명과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진다.
법률사무소 영신 임원균 변호사는 “사람이 다친 사고에서 다친 사람을 두고 도주했을 때 '뺑소니'(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가 성립하는 무거운 죄”라며 “차량만 부서진 물적 피해가 중심이라면, 사고 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고 후 미조치'(도로교통법 위반) 문제로 보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특가법상 도주치상죄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반면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첫 조사가 가장 중요”…변호사 동석 필요한 이유
변호사들은 이처럼 혐의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일수록 첫 경찰 조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초기 진술이 사건의 방향 전체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명중 임승빈 변호사는 “‘인지부조화로 당황했다’는 심리 상태를 조사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설명하다 보면 오히려 진술이 꼬여 불리하게 남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조사가 실무상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짚었다.
검사 출신인 법무법인 선승 안영림 변호사는 “교통사고 직후 곧바로 정차하지 않았고, 음주운전까지 한 상황이라면 도주의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될 수 있다”며 “첫 조사부터 변호사의 동석 하에 조사를 받고 반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하여 적극적으로 반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 역시 “경찰 조사 단계부터 변호사가 동행하는 것은 의뢰인의 방어권 행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사고 후 미조치' 혐의는 고의성 판단이 중요하므로,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의 유도 신문에 적절히 대응하고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변호사의 조력이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