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원 청소기 팔았는데 '사기꾼'으로 고소당했습니다
4만원 청소기 팔았는데 '사기꾼'으로 고소당했습니다
4만원 거래가 경찰서행으로…'회피'가 부른 최악의 시나리오

A씨가 쓰지 않는 청소기의 작동 여부를 확인한 뒤 중고로 팔았다가 사기꾼으로 몰리게 됐다. 그 이유는?/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어느 날 걸려온 전화, '사기 혐의로 고소됐습니다'
"사기 혐의로 고소되셨습니다." 어느 날 A씨에게 걸려온 경찰의 전화 한 통은 4만원짜리 중고 청소기 거래를 순식간에 형사 사건으로 바꿔놓았다. 작동을 확인하고 팔았던 물건인데, 어쩌다 '사기꾼'으로 몰리게 된 걸까.
A씨는 오랫동안 쓰지 않던 청소기를 팔기 위해 깨끗이 닦고 정상 작동하는지 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구매자를 만나 4만원에 제품을 넘겼고, 구매자는 현장에서 작동 여부를 따로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구매자로부터 "조금만 돌리면 꺼진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연락이 왔다. 과거 다른 중고거래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 A씨는 '진상 고객'이라 단정하고 소통을 피하기 위해 앱에서 회원 탈퇴를 해버렸다. 이 회피성 대처가 구매자의 오해를 샀고, 결국 경찰서행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졌다.
'속일 생각' 없었다면 사기죄 아니다
법조계는 A씨의 사기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형법상 사기죄의 칼날은 '기망의 고의', 즉 처음부터 상대를 속여 돈을 뜯어내려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는지에 향하기 때문이다.
심준섭 변호사(법무법인 심)는 "쉽게 말해, 고장 난 걸 알면서도 일부러 숨기고 팔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사기죄가 된다"며 "판매 전 작동을 확인했다면 '속일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역시 재물을 빼앗으려는 '고의성'이 없다면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8도443 판결).
문제는 '회피'였다…민사 문제를 형사 사건으로 키운 탈퇴
그렇다면 A씨는 아무 잘못이 없을까? 문제는 그의 '대처 방식'이었다. 환불 요구에 답하지 않고 회원 탈퇴를 한 행동은 구매자에게 '사기꾼이 도망갔다'는 강한 의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는 "거래 후 연락 두절과 회원 탈퇴는 사기죄의 직접 증거는 아니지만, 수사기관에 매우 불리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래 이 사건은 물건의 하자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민사상 '하자담보책임'(민법 제580조)으로 해결할 문제였다. 핵심은 판매자가 물건의 하자를 알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구매자가 이를 몰랐다면 계약을 해제(환불)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의 회피가 민사로 풀 수 있었던 분쟁을 형사 고소로 키운 셈이다.
경찰서 가기 전,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만약 A씨처럼 억울하게 고소당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한솔 변호사(법률사무소 강율)는 "고소장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정확한 혐의부터 파악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조언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판매 전 제품 상태를 확인한 증거(사진, 영상 등) ▲속일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일관되게 진술해야 한다. 분쟁 해결 의지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구매자와 나눈 대화 내용, 환불을 제안했던 정황 등을 증거로 제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4만원짜리 중고 거래가 남긴 씁쓸한 교훈은 명확하다. 중고거래 시 판매자의 투명한 정보 제공은 기본이며, 갈등이 생겼을 때 회피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적극적인 소통만이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