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도와준다더니…‘사기범’ 낙인 찍혔습니다”
“대출 도와준다더니…‘사기범’ 낙인 찍혔습니다”
변호사들 “속았다는 점 입증 못하면 실형 가능성…자수 전 증거 확보가 관건”

A씨는 대출심사에 필요하다는 말에 속아 사기꾼에게 체크카드를 보냈다가 전과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통장 빌려줬다가 ‘대포통장’ 범죄자로…대출 사기 피해자의 눈물
“대출 심사에 필요하다는 말만 믿고 체크카드를 보냈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사기꾼이 됐습니다.”
대출을 받으려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전과자 위기에 놓인 A씨의 절규다.
급전이 필요했던 A씨는 얼마 전 ‘대출 한도 상향을 도와준다’는 텔레그램 광고를 보고 한 줄기 희망을 가졌다. 상담원은 “대출 심사에 유리한 기록을 만들어야 한다”며 모바일 앱 정보와 체크카드를 퀵서비스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의심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며칠 뒤, A씨는 은행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자신의 계좌가 사기 범죄에 이용돼 지급정지 조치가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제야 사기당했음을 깨달은 A씨가 텔레그램에 접속했을 땐 이미 상담원은 대화방을 삭제하고 사라진 뒤였다. A씨는 순식간에 대출 사기의 피해자에서 ‘대포통장’을 제공한 범죄 혐의자로 전락했다.
“나도 피해자인데…‘사기 공범’으로 처벌받나?”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상황이 전형적인 ‘대출빙자형 통장 대여 사기’라며, 형사 처벌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우선 체크카드와 같은 접근매체를 타인에게 넘겨준 행위 자체만으로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
법무법인 신의 박지영 변호사는 “대출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체크카드를 보낸 행위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사기 방조’ 혐의다.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쓰일 것을 알면서도 빌려줬다고 판단되면 사기죄의 공범으로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범죄에 가담한다는 의사가 없었더라도, 법원에서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범죄의 고의(범죄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행하는 것) 여부를 판단한다”며 “‘범죄의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라고 강조했다. 사기방조죄가 인정되면 초범이라도 실형이 선고될 수 있다.
“증거도 없이 자수? ‘골든타임’ 놓치면 끝”
A씨처럼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수를 고민하는 경우, 전문가들은 ‘속도’와 ‘전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경찰로부터 연락이 오기 전에 즉시 자수해야 한다. 연락이 온 이후에는 자수가 인정되지 않아 형량 감경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자수는 처벌 수위를 낮출 가장 강력한 카드지만, ‘골든타임’이 있다는 의미다.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사라졌다고 해서 포기해선 안 된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는 “사건 경위 정리서, 통장 전달 경위, 은행 통지 문서, 퀵서비스 이용 내역 등 보조 증빙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대화방을 없앤 정황을 적극적으로 진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증거를 인멸한 게 아니라, 사기범에게 또 다른 피해를 본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묶인 내 계좌와 피해금, 어떻게 되나?”
A씨의 계좌로 들어온 돈은 다른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피 같은 돈이다. 이 돈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돌아간다. A씨가 임의로 사용할 수 없으며, 돌려받을 수도 없다.
한번 ‘사기이용계좌’로 등록되면 금융거래 제한은 피할 수 없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자수를 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해 ‘대출 사기의 피해자’임을 잘 소명한다면, 기소유예(재판에 넘기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처분)나 벌금형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수사가 종결되고 무혐의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야만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에 제한 해제를 요청할 수 있어, 금융 생활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A씨는 사기 피해자임과 동시에 형사 처벌 대상이 된 이중의 곤경에 처했다. 법의 심판대 위에서 ‘고의성 없는 피해자’임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셈이다. 한순간의 절박함이 범죄의 낙인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A씨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