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이별한 지 1시간 만에 추락사, 법원은 왜 '우연한 사고'라 봤나
연인과 이별한 지 1시간 만에 추락사, 법원은 왜 '우연한 사고'라 봤나
"살려달라" 20분간 절규
법원 "자살 아닌 사고" 판단

생성형 AI로 만든 본문과 무관한 이미지
연인과 헤어진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오피스텔 10층에서 추락해 숨진 20대 여성. 보험사는 '자살'을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지만, 법원은 '우연한 사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률신문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고인이 남긴 마지막 20분 행적에 주목했다.
비극의 그날 밤, 10층 난간에 매달린 딸
어머니 B씨는 2005년, 딸 A씨를 위해 상해사망 시 보험금 2억을 지급하는 보험에 가입했다. 평범했던 모녀의 일상은 2024년 5월 새벽에 송두리째 무너졌다. A씨가 살던 오피스텔 10층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보험사(C사)는 A씨가 사고 직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사실을 근거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상해 보험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 B씨는 딸의 죽음이 '우연한 사고'였다고 맞섰다.
법원의 눈, 마지막 20분에 꽂히다
사건의 열쇠는 A씨가 난간에 매달려 있던 마지막 20여 분의 행적이었다. 창원지법 진주지원 민사1단독 정재우 부장판사는 경찰의 112 신고 처리 기록에 주목했다.
법원은 "A씨는 추락 직전까지 약 20분 이상 난간에 매달려 울면서 '살려달라'고 외치고, 엄마와 오빠를 애타게 불렀다"며 "이는 자살을 의도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이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했다는 점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은 A씨가 술에 취해 균형을 잃고 실족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오피스텔 창문틀의 높이 등 물리적 구조를 볼 때, 만취 상태였다면 충분히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별 통보, 자살 동기 되기엔 부족했다
보험사가 핵심 근거로 내세운 '이별 통보' 역시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판부는 "A씨가 약 1년간 교제하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 사실은 인정되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보면 자살을 고민할 만큼의 심각한 갈등이나 슬픔을 겪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A씨의 삶에 대한 의지도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됐다. △안정적인 직장과 원만한 대인관계 △사망 3~4일 전 가족과의 제주도 여행 계획 완료 △사고 1시간 전 동료에게 "내일은 택시로 출근하겠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등. A씨의 삶 곳곳에는 미래를 향한 계획들로 가득했다.
'자살' 입증 책임은 보험사에… 다른 판례는?
이번 판결의 핵심은 '입증 책임'이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려면, A씨의 죽음이 명백한 '자살'임을 증명해야 한다. 대법원 판례(2010다6857) 역시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은 보험사가 증명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C사는 A씨의 자살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비슷한 추락사 사건에서도 법원의 판단은 엇갈린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결(2018가합1822)에서는 고인이 여자친구와 나눈 문자메시지에서 명확한 자살 의도가 드러나 보험사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반면, 심신상실 상태에서의 자살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도 있다. 창원지법 밀양지원(2022가단12260)은 중증 우울장애를 앓던 피보험자의 자살에 대해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며 보험금 지급을 명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