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분노, 생계를 위협하다…'보복운전' 덫에 걸린 화물차 기사
순간의 분노, 생계를 위협하다…'보복운전' 덫에 걸린 화물차 기사
상대방 '칼치기'에 급브레이크로 대응, 면허취소 위기…법조계 "상대 도발·생계 곤란 적극 소명해야"

생계를 책임지던 화물차 운전자가 상대 차량의 끼어들기와 모욕적인 손짓에 분노해 급브레이크로 대응했다가 보복운전으로 신고됐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손가락 욕에 욱해서…" 한순간의 감정이 앗아간 운전대, 파산 위기 몰린 가장의 호소
12.5톤 화물차 운전대를 잡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한 가장이 순간의 분노로 면허취소 위기에 내몰렸다. 상대 차량의 갑작스러운 끼어들기와 모욕적인 손짓에 대응한 것이 '보복운전'이라는 덫이 되어 돌아왔다.
"나를 해코지하려는 건가"…5km의 공포 추격전
사건은 지난 10월 11일 밤 11시경 인천의 한 도로에서 시작됐다. 지인들과 함께 이동하던 A씨의 차량 앞으로 한 스파크 차량이 직진 차선에서 무리하게 끼어들었다. A씨는 놀라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켰지만, 돌아온 것은 스파크 운전자의 모욕적인 손가락 욕설이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 A씨는 스파크 차량 앞으로 차선을 변경해 1~2회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A씨는 "상대방을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파크 차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약 5km에 걸쳐 A씨의 차량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A씨는 공포감을 느꼈다. 그는 "나를 해코지하려는 게 아닌가 두려움을 느껴 함께 있던 지인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차에서 내려 항의하려 다가간 A씨에게 스파크 운전자는 또다시 손가락 욕을 날렸다. 결국 A씨는 홧김에 상대 차량의 지붕을 손바닥으로 내려치고 말았다.
벌점 100점에 면허 취소…"빚 갚는 중에 파산할 판"
이 모든 상황은 상대방의 신고로 '보복운전' 사건이 됐다. A씨는 검찰에 송치(수사 기관이 사건을 검찰로 넘기는 절차)됐고, 면허 벌점 100점이 부과됐다. 도로교통법상 누적 벌점이 121점 이상이면 면허가 취소된다. 운전으로 생계를 잇는 A씨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처분이다.
A씨는 "최근 사기를 당해 빚을 갚고 있는 와중에 운전까지 못하게 되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며 "먼저 위협을 받은 것은 나인데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정당방위" vs "명백한 위협"…변호사들 의견도 분분
A씨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핵심 쟁점은 A씨의 행위를 '보복의 고의'가 담긴 위협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상대의 도발에 대한 '방어적 대응'으로 볼 것인지다.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는 "상대 차량의 무리한 차선 변경과 손가락 욕설 등 도발이 먼저 있었고, 급브레이크도 위협이 아닌 순간적인 감정적 반응이었음을 강조해야 한다"며 보복의 고의성을 부인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김경태 변호사(김경태 법률사무소) 역시 "상대방의 선제적 도발과 지속적인 추적으로 인한 정당한 불안감이 있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혐의를 부인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김현중 변호사(리라법률사무소)는 "보복운전 혐의에 대해 다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며 "합의 후 기소유예(죄는 인정되나 검사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를 노려보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형사처벌과 행정처분, 두 개의 전쟁…'생계'가 관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A씨가 '생계형 운전자'라는 점을 법원에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성준 변호사(법무법인 에스엘)는 "생계형 운전자라는 점은 정상참작의 중요한 여지"라고 설명했다.
결국 A씨는 보복운전 혐의에 대한 형사 재판과 면허 취소라는 행정처분, 두 개의 싸움을 동시에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순간의 분노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한 가정의 생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도로 위 사소한 시비가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