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어머니 빚, 내가 갚아야 하나요?…'가족'의 법적 경계선
새어머니 빚, 내가 갚아야 하나요?…'가족'의 법적 경계선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후 날아온 가전제품 할부금 청구서…상속포기와 계모자 관계의 법적 해석

계모와 자녀는 민법상 상속인이 아니므로 새어머니의 빚은 변제 의무가 없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잇따라 세상을 떠난 뒤, A씨에게 날아든 건 새어머니의 빚 독촉장이었다.
유품을 정리하던 A씨의 손이 멈췄다. 새어머니 명의로 된 가전제품 리스 할부금 청구서였다. 계약 해지를 문의하자 리스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남은 할부금과 위약금을 A씨에게 청구했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상속포기를 결심한 A씨에게 또 다른 빚의 그림자가 덮쳐온 순간이었다.
"서류상 가족인데…" 빚의 굴레, 어디까지 이어지나
A씨의 아버지는 생전 새어머니의 채무가 많아 아내의 재산 상속을 포기했다. 이제 A씨는 아버지의 빚을 떠안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상속을 포기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 이번엔 새어머니의 빚이 A씨를 직접 겨눴다. A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동생이 나란히 올라 있었다. 리스 회사는 이 서류 한 장을 근거로 A씨를 압박했다.
"친어머니도 아닌 분의 빚까지 제가 갚아야 합니까?" A씨는 답답한 마음에 법률 전문가의 문을 두드렸다. 서류상 '가족'이라는 굴레가 현실의 빚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법적 상속인 아니다"…전문가들이 제시한 명쾌한 해법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A씨는 변제 책임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무법인 심의 심준섭 변호사는 "민법상 계모와 자녀는 혈족이나 인척 관계가 아니므로 서로 상속인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함께 기재됐다는 사실만으로 법적 상속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새어머니의 빚은 그의 법정상속인인 친자녀나 다른 상속인에게 돌아갈 뿐, A씨에게는 한 푼도 갚을 의무가 없다. 법무법인 쉴드의 이진훈 변호사 역시 "계모와 계자녀 관계는 법적인 친족관계가 아니므로 상속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빚의 고리 끊는 '두 개의 방패'…상속포기와 내용증명
전문가들은 A씨가 '두 개의 방패'를 사용해 빚의 고리를 완벽히 끊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첫째,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를 신고하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의 빚으로부터 A씨를 지켜줄 첫 번째 방패다.
둘째, 새어머니의 빚을 독촉하는 리스 회사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채권자가 부당하게 변제를 요구할 경우, 자신은 계모의 법적 상속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채무 변제를 거부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때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첨부해 법적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면 더 효과적이다.
결국 A씨는 아버지에 대한 상속포기 절차를 밟는 동시에, 리스 회사에는 법적 근거를 들어 당당히 채무 이행을 거절하면 된다. 갑작스러운 비극 뒤에 찾아온 부당한 빚 독촉. 법은 감정이나 관습이 아닌, 명확한 권리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