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0만원에 집 넘기고 "장례 치러달라" 노부부의 공증 계약…진짜 법적으로 가능할까?
3300만원에 집 넘기고 "장례 치러달라" 노부부의 공증 계약…진짜 법적으로 가능할까?
시세 38% 헐값 매매에 거주권 유보·장례 부담 합의
"계약 자유 원칙상 유효"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시세 8700만 원짜리 집을 3300만 원에 넘기는 대신,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살게 해주고 장례와 유품 정리를 도맡아 달라는 노부부의 사연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영화 같은 이 미담을 두고 "금융실명제 위반이라 주작(조작)이다", "한국 법상 불가능한 계약"이라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사연 속 계약서가 현실 법정에서 얼마나 효력을 가질지 검증해 봤다.

"죽을 때까지 살고 장례 치러달라"…파격 조건, 법원 가면 통할까
사연에 따르면 노부부는 이웃에게 집을 시세보다 훨씬 낮은 3300만 원에 매도했다.
대신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 ① 사망할 때까지 거주를 허용할 것, ② 사망 후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매수인에게 귀속할 것, ③ 시신 수습과 화장·납골 처리를 해줄 것이다. 이들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공증까지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계약은 한국 법체계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형태다.
우리 민법은 계약 자유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어 당사자 간 합의된 내용이면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법률적으로 이 계약은 시세보다 현저히 낮게 파는 대신 거주권을 보장받는 '용익권(사용대차·거주권) 유보부 매매'이자, 장례 절차를 매수인에게 지우는 '부담부 계약' 또는 '사인증여' 성격을 띤다.
그렇다면 노부부가 받은 공증은 어떤 역할을 할까. 흔히 공증을 받아야만 계약이 성립한다고 오해하지만, 공증은 계약의 효력 발생 요건이 아니다.
수원지방법원은 "공증은 증명력을 부여하는 것에 불과할 뿐 그로써 법률관계가 발생, 변경 또는 소멸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2014가합1938).
다만 공증인법 제2조에 따라 작성된 공정증서는 막강한 증거력을 갖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증인이 인증한 사서증서는 진정성립이 추정되므로(2008스119), 향후 유족 등 제3자가 나타나 계약의 진위를 다투기 매우 어려워진다.
노부부는 분쟁의 싹을 자르기 위해 가장 확실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 둔 셈이다.
단, 암초는 세금이다. 시세의 약 38% 수준으로 이루어진 저가 매매이므로, 차액인 약 5400만 원에 대해서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증여세 과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 역시 법에 따라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남의 이름으로 몰래 만든 통장, 금융실명법 위반일까?
네티즌들이 '가짜 사연'이라고 지적한 핵심 근거는 노부부가 남겨둔 3300만 원짜리 통장이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된 이 통장의 예금주가 다름 아닌 글쓴이(매수인)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는 대목 때문이다.
제3자인 노부부가 남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해 돈을 넣어둔 것은 명백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법리를 오해한 결과다. 금융실명법 제3조 제3항이 타인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차명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맞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불법재산 은닉, 자금세탁, 강제집행 면탈, 조세포탈 등 명백한 탈법행위 목적이 있어야만 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사연 속 노부부가 글쓴이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 돈을 넣어둔 목적은, 자신들이 죽은 뒤 약정된 재산을 글쓴이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범죄 수익을 숨기거나 세금을 포탈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으므로, 법조계에서는 이를 허용되는 선의의 차명거래로 해석한다. 즉, 금융실명법 제3조 제3항 위반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선의라도 남의 이름 서명은 중범죄⋯'사문서위조·업무방해' 피할 수 없어
다만, 네티즌들이 조작을 의심하는 현실적인 장벽은 남아 있다. 금융실명법 위반 덫은 피했을지 몰라도, 본인 몰래 통장을 개설하려면 피할 수 없는 형법상 범죄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2005다21821)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계좌를 개설해 줄 때 본인의 신분증이나 적법한 위임장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할 실명확인 의무가 있다.
본인 몰래 통장을 개설하려면 결국 은행의 예금거래신청서에 타인(글쓴이)의 서명을 무단으로 작성해 제출해야만 한다.
이는 단순히 직원의 절차적 흠결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서명을 몰래 작성하는 행위는 금융실명법 위반과 별개로 형법상 명백한 사문서위조죄 및 위조사문서행사죄를 구성한다.
나아가 위조된 서류를 내밀어 은행원의 계좌 개설 업무를 속인 것이므로 은행에 대한 업무방해죄나 사기죄까지 성립하는 중범죄다. 아무리 노부부의 의도가 선의의 선물이었다 하더라도, 타인의 서명을 위조해 은행을 속인 행위 자체는 엄연한 형사 처벌 대상이다.
요즘처럼 본인 확인이 엄격한 은행 시스템에서 직원이 위임장도 없이 타인 명의 계좌를 만들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감동적인 사연이 실화라면, 당시 은행 직원의 중대한 절차 위반이나 명의 도용 등 심각한 불법 행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