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하시죠" 보이스피싱범의 제안, 덥석 물면 '독'이 된다
"합의하시죠" 보이스피싱범의 제안, 덥석 물면 '독'이 된다
피해금 전액은커녕 빈손 될 수도…"돈부터 받고 서류는 나중에"

검거된 보이스피싱범과 합의 시 피해금 전액 배상은 매우 드물다. / AI 생성 이미지
"피의자 변호인입니다. 합의하시죠." 검거된 보이스피싱범의 달콤한 제안에 피해자는 잃어버린 돈을 되찾을 마지막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전액 배상은 드물다"며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돈을 받기도 전에 선처를 약속하는 '처벌불원서'를 써주는 것은 스스로 구제의 길을 막는 최악의 수.
보이스피싱 형사 합의에 숨겨진 함정과 피해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생존 전략'을 법률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짚어본다.
"피해금 전액이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난해 텔레그램 '팀미션' 사기로 큰돈을 잃은 A씨. 최근 범인이 검거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한 것도 잠시, 피의자의 변호인으로부터 합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피해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A씨는 합의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섣불리 합의했다가 불이익은 없을지 복잡한 마음에 전문가들을 찾았다.
전문가들의 답변은 현실적이었다. 법무법인 베테랑 이슬기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공범들이 합의금을 제안할 때, 피해금 전액을 제안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법무법인 모먼트 서상영 변호사 역시 "일반적으로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자가 피해금 전액을 배상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긴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범인들의 경제적 능력, 조직 내 역할 등에 따라 실제 제안되는 합의금은 피해 원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돈 먼저, 서류는 나중에"…합의 협상의 제1원칙
그럼에도 합의는 피해 회복의 가장 현실적인 경로일 수 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합의의 제1원칙은 '선(先)입금, 후(後)서류'다. 피의자 측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합의가 절실하므로 협상의 주도권은 피해자에게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처벌불원서'다.
법률사무소 태희 민경남 변호사는 "처벌불원서나 합의서를 작성해 주기 전에 반드시 합의금 전액을 확실하게 입금받으셔야 하며, 일부 금액만 먼저 받고 합의를 해주는 일은 피하셔야 합니다"라고 강력히 조언했다. 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의 서아람 변호사 역시 "전액 수령 후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는 구조가 안전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섣불리 용서의 뜻을 내비쳤다간 돈도 제대로 못 받고 가해자의 처벌 수위만 낮춰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엄벌 탄원서, '독'일까 '약'일까?
그렇다면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는 합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A씨는 합의금을 더 받기 위해 탄원서를 먼저 내는 것이 유리할지 궁금해했다.
이에 대해 민경남 변호사는 "재판부에 피의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면 상대방에게 강한 심리적 압박을 주어 합의금 액수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미 배상명령신청서를 등록했더라도 구체적인 피해와 고통을 담은 진술서를 법원에 추가로 제출하여 객관적인 증거와 함께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협상 과정에서 훨씬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탄원서 제출 시점과 종류는 신중해야 한다. 서아람 변호사는 "선처 의사를 먼저 밝히면 오히려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법무법인(유한) 해광 손철 변호사도 "탄원서는 보통 합의가 이루어진 뒤 선처 의사를 밝히는 문서이기 때문에, 미리 제출한다고 해서 합의금이 올라가는 경우는 드뭅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엄벌 탄원'은 상대를 압박하는 '약'이 될 수 있지만, 섣부른 '선처 탄원'은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합의 결렬 시 최후의 보루: 배상명령과 민사소송
만약 합의가 결렬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씨는 이미 형사재판부에 '배상명령'을 신청한 상태다. 이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민사적 손해배상까지 받아내는 제도지만, 전문가들은 큰 기대를 걸지 말라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베테랑 이슬기 변호사는 "배상명령신청은 인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말했고, 법무법인 모먼트 서상영 변호사 역시 "배상명령 신청서는 기각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라고 전망했다. 보이스피싱은 조직적 범죄라 검거된 피고인 한 명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따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최후의 보루는 별도의 '민사소송'이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민사 판결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이를 통해 판결문이라는 '집행권원'을 확보해야 가해자의 재산을 추적해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합의가 무산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별도의 민사소송을 통해 끝까지 피해 회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