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순위보증금 7억' 속았는데…중개사 책임 20%, 이게 맞나
'선순위보증금 7억' 속았는데…중개사 책임 20%, 이게 맞나
법원 "주범은 임대인" 판단에 피해자 "상고 고민"…전문가 의견은?

공인중개사의 잘못된 정보로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중개사 상대 소송에서 20% 책임만 인정받았다. / AI 생성 이미지
"선순위보증금이 6억"이라는 공인중개사의 말만 믿고 전세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 보증금은 13억 원이 넘는 조직적 전세사기였다.
피해자가 중개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중개사 책임을 20%로 제한하자, 피해자는 "부정확한 정보를 걸러줘야 할 전문가의 책임이 너무 가볍다"며 대법원의 문을 두드려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2심 판결의 '법리 오해' 여부가 상고심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무지했다"…'6억' 말 한마디에 13억 빚더미
모든 비극은 공인중개사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전세 계약을 앞둔 A씨에게 공인중개사는 해당 건물의 선순위보증금(먼저 보장받는 임차인의 보증금)이 6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인에게 구두로 전해 들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입주 후 알게 된 진실은 참혹했다. 실제 선순위보증금은 13억 500만 원으로, A씨가 들은 금액보다 7억 원 이상 많았다. A씨가 계약한 집은 '관악구 중국인 전세사기' 사건에 연루된 매물이었고, 임대인은 사기 총책이 내세운 '바지사장'이었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사실 저는 그때 당시 부동산에 대하여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단순히 서명하라는 곳에 서명만 했더니 이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라고 토로했다.
법원 "중개사 잘못 20%"…핵심 원인은 '임대인 사기'
결국 보증금을 떼인 A씨는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A씨에 따르면, 2심 재판부는 중개사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근본적인 원인은 임대인이 과도하게 근저당 설정을 한것이며,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것이 원인”이라고 보았으며, A씨에게도 “이해당사자로서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씨는 "공인중개사의 역할이 건물 가치에 비해서 근저당 설정이 과도하게 되지 않았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중개의뢰인에게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해서 의뢰인이 계약을 할지말지 결정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게 공인중개사의 역할 아닌가요?"라며 판결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상고 실익 있다" vs "뒤집기 어렵다"…전문가들의 엇갈린 시선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으로 갈 수 있을까?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상고에 신중해야 한다는 측은 대법원이 '법률심(법률 적용의 오류만 판단하는 심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신은정 변호사는 "단순히 과실 비율 20퍼센트가 부당하다는 주장은 사실인정이나 법원의 재량 문제로 보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며 실익이 적을 수 있다고 봤다.
홍윤석 변호사 역시 "대법원은 법률심이므로 단순히 배상 책임 비율(20%)이 적어 억울하다는 사실관계 다툼만으로는 결과를 뒤집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반면 상고를 통해 다퉈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민경남 변호사는 "중개의뢰인의 계약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정보를 사실과 다르게 안내한 행위는 단순히 임대인의 잘못 뒤에 숨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상고심을 통해 책임 비율의 적정성을 다시 다투어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푸름 변호사 또한 "구두로만 전달받은 선순위보증금 정보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그릇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례 경향에 비추어, 2심에서 인정된 20% 과실 비율은 상고심에서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라고 분석했다.
'법리 오해' 입증이 관건…대법원으로 가는 좁은 문
결국 상고심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과실 비율 20%가 너무 낮다'는 억울함의 호소를 넘어, 2심 판결에 명백한 '법리 오해'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한병철 변호사는 "상고는 가능하지만 대법원은 사실관계나 과실비율을 다시 판단하는 곳이 아니므로, 법리오해를 명확히 잡아야 승산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중개사가 불확실한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그 위험성을 알리지 않았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례(대법원 2022다212594)를 내놓은 바 있다.
A씨가 대법원의 문을 두드릴 경우, 2심 재판부가 이 판례의 법리를 오해했거나 중개사의 설명 의무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점을 치밀하게 파고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7억 원의 거짓 정보에서 시작된 비극이 대법원에서 어떤 결론을 맞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