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산 '랏슈' 한 병, 내 인생을 마약 밀수범으로?
호기심에 산 '랏슈' 한 병, 내 인생을 마약 밀수범으로?
"수사 협조하면 기소유예" 세관 말 믿었다간…변호사들 '엄중 경고'

임시마약류 '랏슈'를 해외 직구하다 적발 시, 수사관의 '기소유예' 언급만 믿고 개인 사용을 자백하면 밀수입죄로 중벌을 받을 수 있다. / AI 생성 이미지
해외 직구로 산 '랏슈' 한 병이 마약 밀수라는 거대한 덫이 될 수 있을까?
직장으로 들이닥친 세관에 '개인 사용' 목적임을 자백한 A씨. "기소유예"라는 수사관의 말에 잠시 안도했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자백을 유도하기 위한 수사 기법일 수 있다"며 "단순 소지가 아닌 밀수입죄로 10년 징역도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첫 조사 진술 하나에 인생이 걸렸다.
평범한 직장 덮친 세관... "택배 서명 좀" 한마디에 시작된 악몽
평범한 직장인 A씨의 일상은 해외에서 온 문자 한 통으로 무너졌다. 해외 배송품을 받으려면 '대면 서명'이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약속 장소인 직장 앞에서 A씨를 기다린 건 택배기사가 아닌 세관 직원 세 명이었다. 그들은 A씨가 프랑스 사이트에서 주문한 '랏슈(알킬 니트라이트)'를 내보이며 본인이 시킨 물건이 맞는지 물었다.
당황한 A씨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서 알게 됐고, 개인이 사용할 목적으로 샀다"고 모두 털어놨다.
5분 남짓한 문답이 끝난 뒤, A씨가 받은 것은 택배 상자가 아닌 '인천세관 출석 요구'였다. 한 수사관은 "수사에 잘 협조해 주면 기소유예가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A씨는 이 말을 믿고 지정된 날짜에 출석하겠다고 답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법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기소유예는 확약 아닌 수사기법"…변호사들의 일제 경고
A씨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수사관의 말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는 "'협조하면 기소유예가 나올 것'이라는 조언은 자백을 유도하기 위한 수사 기법일 수 있다"며 "마약 밀수는 초범이라 하더라도 엄벌에 처해지는 경향이 강하므로, 단순히 수사에 협조하는 것만으로 기소유예 처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진열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비평산) 역시 "처벌을 결정하는 주체는 검사"라며 "수사관의 말을 맹신하여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A씨가 구매한 '랏슈'는 국내에서 '2군 임시마약류'로 지정된 물질이다. 이를 해외에서 구매해 국내로 들여오는 행위는 단순 소지나 투약이 아닌 '밀수입죄'에 해당한다.
한병철 변호사(법무법인대한중앙)는 해외 사이트 직접 주문을 통한 반입 시도는 단순 소지가 아닌 수입 행위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2군 임시마약류를 수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운명 가르는 '첫 조사'... "불리한 진술 기록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물론 기소유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초범인 점 ▲판매 목적이 아닌 개인 사용 목적인 점 ▲수입한 양이 소량인 점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태도 등이 소명되면 검찰 단계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관건은 '첫 조사'에서의 진술이다. 이주한 변호사(법률사무소 한강)는 "현장에서 이미 여러 진술을 한 상태이므로, 이후 조사에서는 처음 설명과 진술이 충돌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동훈 변호사(클리어 법률사무소)는 "세관 출석 당시 작성되는 첫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법률 전문가의 구체적인 조력 없이 혼자 대응하다가 의도와 다른 불리한 진술이 기록되면 향후 결과를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고 경고했다.
결국 수사관의 달콤한 말을 믿고 안심하기보다, 첫 조사부터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치밀하게 대응하는 것이 '마약 밀수범'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유일한 길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