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는 날 찍고 있었다”...스키장서 친구가 연출한 악몽, 법의 심판은?
“샤워하는 날 찍고 있었다”...스키장서 친구가 연출한 악몽, 법의 심판은?
경찰 “증거 부족” 난색에 법조계 “명백한 범죄”...불법촬영, 정황만으로 처벌 가능할까

A씨가 친구들과 같이 간 스키장 숙소에서 불법 촬영 피해를 당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친구들과 떠난 스키장 여행, 화장실에서 발견한 녹화 중인 휴대폰은 한순간에 우정을 악몽으로 바꿨다.
“설마 친구가...” 스키장서 마주한 배신
즐거웠던 스키 여행이 악몽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A씨는 2025년 12월, 친구들과 찾은 스키장 숙소에서 샤워를 하던 중 선반 위 파우치에서 자신을 향해 녹화 중인 휴대폰 카메라를 발견했다. 휴대폰의 주인은 다름 아닌 친구 B씨였다.
사건은 A씨가 샤워하러 들어가기 직전 시작됐다. 친구 B씨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먼저 들어가 3~5분가량 머물다 나왔고, 이후 샤워를 시작한 A씨는 정확히 샤워 부스를 향해 녹화 중인 휴대폰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A씨가 휴대폰 주인을 추궁하자 B씨는 자신의 것이라 시인했지만,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요구에 거짓 번호를 대며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A씨의 계속된 추궁에 B씨는 마지못해 올바른 비밀번호를 알려줬고, A씨는 ‘최근 삭제된 항목’에서 방금 전 녹화된 자신의 샤워 영상을 직접 삭제해야 했다.
B씨는 “휴대폰을 말리려고 뒀는데, 액정을 닦다가 카메라가 저절로 켜진 것 같다”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샤워 직전 화장실을 미리 사용한 점, 습기 찬 곳에서 전자기기를 말린다는 비상식적인 해명, 촬영에 최적화된 각도 등 모든 정황은 고의적인 ‘불법 촬영’을 가리키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A씨는 그날 밤 홀로 귀가했고, “합의 없는 처벌”을 다짐하며 B씨와의 인연을 끊었다.
“증거 없으면 처벌 어렵다”...경찰의 벽, 진실은?
A씨는 다음 날 경찰서를 찾았지만, “포렌식으로 영상을 복구해도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이 없으면 처벌이 어렵다”는 절망적인 답변을 들어야 했다. 직접적인 영상 증거가 없으면 혐의 입증이 힘들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판단은 달랐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정황증거만으로도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성폭력처벌법 제14조)’ 혐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윤준기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범행 전 화장실을 먼저 사용하며 촬영을 준비한 정황, 의도적으로 특정 각도로 휴대폰을 설치한 점, 범행 후 잘못된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점 등은 고의성을 입증할 강력한 정황증거”라고 분석했다.
김재헌 변호사(법무법인 베테랑) 역시 “삭제된 영상이라도 포렌식으로 복구해 촬영 시점과 삭제 기록을 확인하고, 당시 함께 있던 다른 친구들의 사실확인서를 받아 제출하면 혐의 입증에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영상 직접 지웠는데...처벌의 열쇠는 ‘고의성’
피해자가 영상을 직접 삭제했다는 사실이 처벌에 걸림돌이 될까?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는 촬영물을 유포하거나 소지해야 성립하는 범죄가 아니라, ‘촬영’ 행위 그 자체로 완성되는 ‘즉시범’이기 때문이다. 영상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재용 변호사(JY법률사무소)는 “단순 신고나 진정으로 진행할 사건이 아니다”라며 “칼에 찔린 피해자가 범행 도구를 찾지 못했다고 고소를 못 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증거 확보를 위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정확한 법률적 고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진 변호사(법무법인 리버티)도 “단순 신고 개념으로는 수사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며 “법리적 내용을 충실히 담은 형사고소장을 정식으로 접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합의는 없다”...피해자가 가야 할 길
전문가들은 A씨가 ‘합의 없는 처벌’을 원하는 만큼, 더욱 전략적인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찰의 초기 판단에 좌절하지 말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정황증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고소장을 정식 제출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B씨의 불합리한 변명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함께 있던 친구들의 증언을 확보해 범행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용수 변호사(법무법인 가림)는 “합의 의사가 없다면 처벌을 원한다는 탄원서를 주기적으로 제출해 그 의사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며 “형사처벌과 별개로 위자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함께 진행해 가해자에게 경제적 처벌을 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의 배신 앞에 선 A씨, 법률 전문가들은 수많은 정황이 가해자를 향하고 있다며 포기하지 말고 법의 심판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