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만 했는데 피의자?” BJ 성착취 사건, 280명 무더기 소환 충격
“후원만 했는데 피의자?” BJ 성착취 사건, 280명 무더기 소환 충격
'몰랐다'는 항변 법적 쟁점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퇴근길에 제가 좋아하는 BJ에게 후원한 것뿐인데,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오라니 황당합니다."
단순 팬심으로 보낸 후원금 하나가 한 시민을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의 공범 혐의자로 만들었다.
평범한 직장인 A씨는 최근 인천경찰청으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라는 출석 요구를 받고 망연자실했다.
자신이 후원한 BJ가 미성년자 성착취 사건에 연루됐고, 후원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는 이유에서다.
A씨의 악몽은 지난 6월 10일 시작됐다. 부산에 거주하는 그는 평소처럼 퇴근 후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BJ에게 소액을 후원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후원 시점이다. 성적인 내용이나 문제가 된 영상이 방송될 때가 아닌, 소소한 일상 대화가 오가는 '퇴근빵'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BJ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며 "단순한 응원 행위가 범죄 연루로 비화한 것은 명백한 확대 수사"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설상가상으로 A씨는 수사 관할 문제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건을 수사하는 인천경찰청까지 가야 하는 물리적, 시간적 부담에 사건을 주소지인 부산으로 이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불가능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단순 팬심이냐, 범죄 방조냐 280명 운명 가를 '고의성'
법조계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으로 '고의성'을 꼽는다.
단순히 후원했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하기는 어렵지만, BJ의 불법 행위를 알면서도 후원했다면 '방조죄(범죄를 용이하게 돕는 행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동우 변호사(법무법인 대온)는 "후원 자체가 곧바로 범죄가 되지는 않지만, 미성년자 인지 여부나 성적 이용 목적성이 핵심 쟁점"이라고 지적했다.
즉, 수사기관은 후원자들이 BJ가 미성년자임을 알고, 성착취 콘텐츠 제작을 암묵적으로 도울 의사가 있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해당 사건을 수임 중인 김연수 변호사(법무법인 정향)에 따르면, 인천서부경찰서는 약 280여 명의 후원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 변호사는 "단순히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는 일반적 항변만으로는 불송치(혐의없음으로 사건 종결) 결정을 받기 어렵다"며 "각 후원자별로 구체적인 정황과 근거를 들어 왜 미성년자로 인지하지 못했는지 개별적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사는데 조사는 인천" 사건 이관은 왜 안 되나
A씨의 또 다른 고충인 '원거리 조사'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형사소송법상 수사는 피의자의 주소지에서도 가능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와 다수의 피의자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대규모 사이버 범죄는 수사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위해 특정 경찰서에서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박진우 변호사(법무법인 영웅)는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 최초 신고가 접수된 특정 경찰서에서 모든 사건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아, 이관을 거절하는 경찰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약 280명에 달하는 후원자를 일일이 출장 조사하거나 사건을 각 주소지로 이관하는 것은 실무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변호사들은 '촉탁조사(주소지 경찰서에서 대신 조사를 진행하는 절차)'를 요청하거나, 건강상의 이유 등 특별한 사정을 들어 공식적으로 이관을 재요청해볼 여지는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A씨와 같은 후원자들이 억울한 혐의를 벗기 위해서는 첫 경찰 조사가 가장 중요하다.
이진채 변호사(법률사무소 가호)는 "초동 조사는 사건의 방향과 수사의 강도를 결정짓는 핵심 단계"라며 "잘못된 진술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고, 수사기관이 유도하는 불리한 진술을 차단하기 위해 변호인과 함께 실전 수준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조사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팬심'과 '범죄'의 경계에 선 280명의 후원자들. 이들의 운명은 '몰랐다'는 주장을 법정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하느냐에 달리게 됐다.
이번 사건의 결과는 향후 온라인 플랫폼 후원자의 법적 책임 범위에 대한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