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성적표 위조 맡겼다가 '먹튀'…돈 잃고 처벌도 받나?
토익 성적표 위조 맡겼다가 '먹튀'…돈 잃고 처벌도 받나?
사기 피해자이자 사문서위조 교사범, 딜레마에 빠진 의뢰인. 엇갈린 법률 조언 속 법적 쟁점을 분석했다.

토익 성적표 위조를 의뢰했다 사기당한 A씨는 사기 피해자이자 사문서 위조 의뢰인이라 경찰 신고가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토익 성적표 위조 의뢰했다 '먹튀'…돈 잃고 처벌까지? 딜레마 빠진 A씨
90만 원을 잃었지만 경찰에 신고할 수 없다. 사기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범죄 의뢰인이기 때문이다. 토익 성적표 위조를 맡겼다가 '먹튀'를 당한 A씨는 지금 돈을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죗값을 치를 것인가 하는 혹독한 딜레마의 한복판에 서 있다.
"보험금 200만원 더 내라"…전형적 사기 수법에 걸려들다
A씨의 시작은 절박함이었다. 토익 성적이 필요했던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성적표 위조 전문가'와 접촉했다. 업체는 선입금 20만 원, 완성 후 잔금 70만 원을 요구했다. A씨는 의심 없이 총 90만 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완성된 성적표가 아닌 황당한 추가 요구였다. 업체는 "결과물을 보내려면 보험금 명목으로 200만 원을 더 입금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미리 고지된 바 없는 요구에 A씨가 항의하며 결과물부터 보내달라고 하자, 업체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전형적인 '추가 입금 유도형' 사기 수법에 당한 것이다. A씨의 손에는 사기꾼과의 대화 기록과 계좌 입금 정보만 남았다.
"고소하면 당신도 공범"…변호사들의 싸늘한 경고
A씨는 억울한 마음에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법적 경고였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검사 출신 권민정 변호사(법률사무소 민앤정)는 "기본적으로 사문서위조 공모관계가 인정되기 때문에 고소했다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김전수 변호사(법무법인 한별) 역시 "고소를 하게 되면, 본인의 사문서 위조 행위도 인지될 가능성이 높아 추천드리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박상호 변호사(캡틴법률사무소)는 한발 더 나아가 "사건화 하면 A씨도 공동정범으로 몰릴 것"이라며 "아쉽지만 빠르게 잊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좋겠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사기 피해자임과 동시에 범죄 의뢰인이라는 A씨의 모순적 지위가 발목을 잡는 순간이었다.
"사기꾼이 '맹탕'이었다면…" 희망이 보이는 '교사의 미수'
하지만 일부 변호사들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기꾼의 '위조 능력' 여부에 따라 A씨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명현준 변호사(법률사무소 명량)는 "상대방이 토익성적표를 위조할 능력이나 의사가 전혀 없음에도 기망하여 돈을 가로챈 사기범죄"라면서도 중요한 단서를 달았다.
그는 "상대측이 (위조) 실행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A씨는) 교사의 미수(범죄를 하도록 부추겼으나 상대가 실행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여 원칙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사기꾼이 처음부터 위조할 생각 없이 돈만 노린 '맹탕 사기꾼'이었다면, 위조라는 범죄 자체가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지시한 A씨도 처벌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김일권 변호사(변호사 김일권 법률사무소)도 "가해자가 문서를 위조하지 않았고, 위조할 능력이 없었다면, 사문서위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A씨가 맞고소 당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음을 시사했다.
형사 처벌 피했더니…'불법원인급여'라는 민사상 거대한 벽
형사 처벌을 피한다 해도 A씨에게는 90만 원을 돌려받는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김경태 변호사(김경태 법률사무소)는 "민사상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금전 반환청구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불법원인급여'란, 불법적인 원인으로 제공된 재산은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는 민법 원칙이다. A씨가 '성적표 위조'라는 불법적 목적을 위해 돈을 건넸기 때문에,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A씨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사기꾼을 고소하면 형사 처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민사 소송을 걸어도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변호사들은 공통적으로 고소 여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하며, 행동에 나서기 전 반드시 형사 전문 변호사와 상담해 법적 위험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