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내가 당신을 겁탈 강간했다" 직접 쓴 '자백 각서', 법원은 왜 휴지조각 취급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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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내가 당신을 겁탈 강간했다" 직접 쓴 '자백 각서', 법원은 왜 휴지조각 취급했나

2025. 08. 25 19:09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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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인가, 성폭행범인가

'강간 인정' 각서에도 무죄, 왜?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19년 12월 1일, 한 호텔 방에서 사건이 시작됐다. 남성 A씨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여성 B씨(당시 58세)를 두 차례 성폭행(준강간)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B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아침에 눈을 뜨니 알몸이었고, 옆에 A씨가 누워 있었다"는 사실을 공소장에 적시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문은 사건 직후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했다. B씨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바로 그날 오전, 두 사람은 다정한 연인 관계에서나 오갈 법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불과 닷새 뒤, 먼저 연락한 B씨는 A씨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고, 그날 밤 또 다른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방식은 다양할 수 있으나, 불과 며칠 전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남성과 스스럼없이 다시 호텔에 가는 행동은 이례적"이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는 대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고, 새해에는 강릉에서 일출을 함께 봤다. 급기야 2020년 10월에는 A씨가 마련한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하며 사실혼 관계에 이르렀다. 법원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수많은 메시지와 동거 사실을 근거로 "피고인과 고소인은 연인 관계였음이 분명하다"고 결론 내렸다.


진술 오락가락한 '고소인', 무죄 판결의 결정적 근거

무죄 판결의 무게를 실은 결정적 요인은 고소인 B씨 진술의 신빙성이었다. 그녀의 진술은 수사 단계마다 중요한 부분에서 번복되며 일관성을 잃었다.


B씨는 고소장과 초기 경찰 조사에서 "성관계 자체는 기억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A씨가 옆에 있어 정황상 성관계가 있었음을 추정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는 "성기 삽입 느낌이 들어 눈을 떴더니 A씨가 내 몸 위에서 후다닥 내려왔다"고 말을 바꿨다. 이는 '추정'이 '직접 경험'으로 바뀐 것이어서 법원은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의 연인 관계를 전면 부인한 점도 신뢰를 무너뜨렸다. B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A씨와 우호적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나, 법원은 두 사람의 여행, 동거 사실, 그리고 연인임을 보여주는 수많은 메시지 등 객관적 증거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자백 각서'의 이면 "두려움 속 굴복의 문서"

검찰이 최후의 카드로 내세운 것은 A씨가 직접 쓴 '자백 각서'와 사과 메시지였다. 각서에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수신인(B씨)을 겁탈 강간하고 망가뜨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각서 작성의 배경을 깊이 들여다봤다. A씨는 당시 공무원이었고, B씨는 "네 소속 기관과 자녀들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겠다"며 압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각서의 문구 중에는 B씨를 "본인", A씨를 "남자 A"라고 지칭하는 등 B씨의 시점에서 작성된 표현이 다수 발견됐다. 법원은 이 각서를 '처벌과 신상 공개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쓴, 자발적 의사에 반한 굴복의 문서'로 판단했다.


"유죄 의심은 들지만" 법의 대원칙으로 무죄 선고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피고인이 고소인을 준강간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이례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의심만으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었다.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유죄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주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고소인의 진술은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 신뢰하기 어렵고, 검찰이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도 '합리적 의심'을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검사의 입증이 이러한 확신을 갖게 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 설령 유죄의 의심이 들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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