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출석요구, 수사관 기피신청 가능할까? 변호사들 답변은
강압적 출석요구, 수사관 기피신청 가능할까? 변호사들 답변은
법조계 “기피신청 어렵지만, 변호인 선임 위한 일정 조율은 정당한 권리... 서면으로 요청하고 증거 남겨야”

경찰이 변호사 선임을 위한 출석 연기 요청을 거부해도 수사관 기피는 어렵다./ AI 생성 이미지
“내일 당장 나오세요” 수사관의 강압적 통보…변호사 선임할 시간도 안 주나
“변호인 선임 때문에 조사를 미뤄달라 했더니, 본인 원할 때 오라는 식으로 강압적으로 나옵니다.”
경찰 조사를 앞둔 A씨가 수사관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안감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조사 하루 전날 출석을 통보하고, 변호인 선임을 위한 일정 조율 요청마저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A씨는 이런 경우 담당 수사관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기피신청’이 가능한지 물었다.
“내일 10시까지 오세요” 하루 전 걸려온 전화 한 통
사건의 시작은 지난달 22일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경찰 수사관은 A씨에게 “내일 오전 10시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한 A씨는 곧바로 수사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하루 종일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연락이 닿은 A씨는 사정을 설명했다. 변호인을 선임할 시간이 필요하니, 조사 일정을 내달 20일경으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수사관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는 A씨의 요청을 거부하며 “최대한 일정을 빨리 잡아야 한다”고 다그쳤다. A씨는 “마치 자신이 정한 시간에 무조건 오라는 식의 강압적인 태도에 겁이 났다”고 토로했다.
결국 A씨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기본적인 권리마저 침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부당한 대우를 하는 수사관을 교체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수사관의 ‘일방통행’식 통보, 기피 사유 될까?
A씨의 질문에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어렵다”고 답했다. 단순히 출석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만으로는 수사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일정 조율 만으로는 기피신청은 조금 어렵다”고 잘라 말했고,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 역시 “출석 일정 조율에 대한 의견 충돌만으로는 수사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수사관 기피신청은 「범죄수사규칙」에 따라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할 만한 구체적 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김경태 변호사는 “명백한 편파수사나 인권침해, 수사권 남용 등의 정황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불친절하거나 강경한 태도만으로는 ‘불공정한 처분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법무법인 어진의 신영준 변호사는 “섣불리 수사관을 기피신청할 경우 인상이 안 좋을 수 있으므로, 우선은 가급적 원만히 협의하여 일정 조정하는 것이 좋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기피신청 어렵다면…‘방어권’ 지킬 현실적 해법은?
그렇다면 A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까. 변호사들은 기피신청이라는 극단적 방법 대신,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킬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신속한 변호인 선임’이다. 법무법인 신의 박지영 변호사는 “경찰조사 전 변호사를 선임한다면 변호사 측에서 일정을 다시 조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클리어 법률사무소 김동훈 변호사도 “수사관의 태도로 볼 때 반드시 변호인을 선임하여 출석하시기 바란다”며 “변호인을 통해 일정을 조율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변호인 선임을 위한 시간 확보는 헌법 제12조가 보장하는 피의자의 정당한 권리다.
법무법인 오른 백창협 변호사는 “변호인 선임을 이유로 한 일정 조율도 허가하지 않는다면 이를 문제 삼을 여지는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구체적인 대응 방안도 제시했다. ▲변호인 선임 계획을 명시한 ‘출석 연기 요청서’를 서면으로 제출하고 ▲수사관의 강압적 태도가 담긴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등 증거를 확보하며 ▲반복적으로 부당한 요구를 할 경우 상급 기관인 청문감사실에 공식 민원을 제기하는 방법이다.
전 서울관악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장 출신인 법률사무소 새율 최성현 변호사는 “모든 대화내용은 녹음 등으로 기록 보관하고, 출석요구서 수령 시점부터의 정황을 상세히 기록하라”고 조언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계속 거부하면 체포영장이 발부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수사에 협조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논리적이고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