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인에게 성병 옮긴 그놈, 제가 고소합니다"… 법의 대답은 'NO', 왜?
"내 연인에게 성병 옮긴 그놈, 제가 고소합니다"… 법의 대답은 'NO', 왜?
헤르페스 2형 고의 전파 시 상해죄 성립… '감염 경로·고의성' 입증이 관건

연인과 성관계후 성병에 걸린 A씨는 그녀에게 성병을 옳겨 준 이전 남친을 고소하고 싶다. 가능할까?/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내 연인에게 성병 옮긴 그놈, 제가 고소합니다"… 법의 대답은 'NO', 왜?
"내 연인에게 성병을 옮긴 남자를 처벌해달라."
한 남성이 엉뚱한(?) 고소장을 들고 법의 문을 두드렸다. 피해자는 연인이지만, 분노한 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 황당하지만 절박한 질문에 법조계는 어떤 답을 내놨을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 9일이었다. A씨는 한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고, 며칠 뒤 여성으로부터 자신이 헤르페스 2형 보균자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A씨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고, 9월 12일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그는 분노에 휩싸였다.
여성은 A씨와 만나기 일주일 전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바로 그 남성이 헤르페스 2형 보균자였다. 여성 역시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A씨를 만난, 또 다른 피해자였던 셈이다.
A씨는 “여자애는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 상태”라며 “원래 보균자인 그 남자를 내 기준에서 고소하고 싶다”고 법률 상담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아닌데요?"… 제3자 고소, 법의 벽은 높았다
A씨의 바람과 달리, 법의 문은 제3자에게 쉽게 열리지 않았다.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가 아니므로 고소인 자격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형사소송법상 범죄로 인한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백창협 법무법인 오른 변호사는 “A씨가 아닌 여성이 그 전 남자를 상해 내지는 과실치상으로 고소를 진행해야 한다”며 “A씨는 고소하더라도 무혐의 처분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즉,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주체는 A씨가 아닌, 바이러스에 직접 감염된 여성이라는 의미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없는 제3자(원 보균자인 남성)를 고소하는 것은 법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A씨는 실제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씨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여성이 고소를 진행할 경우, 참고인으로 나서 진술하는 정도에 그친다.
'알고도 옮겼다면' 상해죄… 하지만 '고의' 입증의 덫
그렇다면 피해자인 여성이 직접 나설 경우, 가해 남성을 처벌할 수 있을까? 법조계는 ‘조건부 가능’을 제시했다. 핵심은 ‘고의성’ 입증이다. 우리 법은 성병 감염 그 자체를 처벌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보균자임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성관계를 맺어 타인을 감염시켰다면 형법상 상해죄(신체의 생리적 기능을 훼손하는 범죄)를 적용할 수 있다.
윤관열 법률사무소 조이 변호사는 “헤르페스 2형 보균자인 남성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전염시킬 목적으로 성관계를 가졌다면, 형법상 상해죄(형법 제257조)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상해죄로 고소가 가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필적 고의란 '병이 옮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식의 태도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죽여버리겠다'는 아니지만 '죽어도 상관없다'는 심리와 같다.
문제는 입증의 어려움이다. 법의 심판대에 가해자를 세우기 위해서는 ▲남성이 성관계 이전에 이미 보균자였다는 사실 ▲여성은 성관계 이전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 ▲남성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여성에게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피해자 측이 명확한 증거로 증명해야 한다.
윤 변호사는 “성병 전파 고소는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려워 기소가 힘든 경우가 많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짚었다.
결론적으로 A씨가 직접 가해 남성을 고소할 길은 사실상 막혔다. 연인을 대신해 정의를 구현하려던 그의 분노는 ‘직접 피해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법의 단호한 벽 앞에서 좌절됐다.
이제 법적 대응의 공은 온전히 피해 여성에게 넘어갔다. 만약 고소를 결심한다면, 그는 자신의 감염 사실을 증명하는 의료기록과 가해 남성과의 관계를 입증할 자료를 모두 챙겨 ‘고의성’이라는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한다. 분노한 제3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