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징계, 피해자는 해고…성희롱 강사의 눈물
가해자는 징계, 피해자는 해고…성희롱 강사의 눈물
성희롱 신고 후 2년째 일감 끊긴 강사, 손해배상 가능할까?

대기업 임직원에게 성희롱을 당한 외부 강사가 신고 후 해고되고, 2년간 일감이 끊기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대기업 임직원에게 성희롱을 당한 외부 강사가 오히려 가해자의 항의로 해고된 뒤, 2년간 일감이 끊기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가해자는 회사 내부 조사를 통해 징계가 확정됐지만, 정작 피해자는 생계를 위협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법조계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보면서도, '소멸시효'와 '인과관계 입증'이라는 두 개의 큰 산을 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희롱 신고했더니…돌아온 것은 '강사 교체' 통보
에이전시 소속으로 대기업 계열사에서 임직원 대상 어학 강의를 하던 A씨. 비극은 한 수강생의 부적절한 행동에서 시작됐다.
A씨는 교육 중 임직원으로부터 성희롱과 약간의 추행을 당했지만, 강의를 계속하기 위해 참고 견뎠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가해 임직원의 황당한 항의였다. 그는 "나만 영어 점수 취득이 안 되었다"며 강사 교체를 요구했고, 결국 교육이 절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A씨는 사실상 해고됐다.
억울함을 참을 수 없던 A씨는 해당 기업 HR팀에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을 정식으로 신고했다. 회사의 조사는 A씨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가해 임직원은 징계를 받았고, 그가 항소했지만 징계는 번복되지 않았다. A씨는 HR 담당자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와 당시 상황이 담긴 녹음 파일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정의가 실현된 듯 보였던 순간, A씨의 고통은 다시 시작됐다. 해당 대기업 계열사는 그를 더는 찾지 않았고, 소속 에이전시마저 일감을 대폭 줄여 2년이 지난 지금까지 A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해자·회사·에이전시,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도, 소송 대상을 명확히 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청구 상대를 ①가해자 개인, ②해당 대기업 계열사, ③에이전시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성희롱·추행이라는 직접적인 불법행위를 저지른 가해 임직원을 상대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특히 회사의 징계가 확정된 사실은 A씨에게 매우 유리한 증거다.
법무법인 쉴드 임현수 변호사는 "가해자가 소속 기업 인사팀의 집중 조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과 이를 입증할 문자 및 녹음 자료가 존재하므로, 이는 소송에서 의뢰인님께 매우 유리한 결정적 증거로 활용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가해자가 소속된 회사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임직원이 업무와 관련된 교육 중 벌인 행위에 대해 회사는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을 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신고 이후 A씨에게 일감을 주지 않은 것은 '2차 가해' 또는 '보복성 불이익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법무법인 약속 조범수 변호사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희롱 행위와 그로 인한 수입 감소 또는 계약 종료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된다면,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와 함께 사안에 따라 사용자 측의 책임도 검토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A씨를 파견한 에이전시의 책임도 문제될 수 있다. 법무법인 리그 공선영 변호사는 "에이전시에 대해서는 신고 이후 배정이 급감한 것이 신고에 대한 불이익 조치임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면,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승소의 관건: '3년의 시효'와 '보복의 증거'
A씨가 법적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바로 '소멸시효'와 '인과관계'다.
가장 시급한 것은 2년이 지났다는 점이다. 임현수 변호사는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현재 2년이 경과한 시점이므로, 아직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아 법적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신속한 법적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음은 신고와 일감 감소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한강 허은석 변호사는 "단순히 강의 배정이 감소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신고와 업무 배제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일감 감소가 A씨의 성희롱 신고에 대한 보복 조치였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도모 김강희 변호사는 구체적인 증거 확보 방안으로 "같은 기간 다른 강사 배정은 유지되었는데 A씨 사안만 급감했다는 자료가 있으면, 경제적 손해 입증에 도움이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가해자 징계라는 '과거의 승리'에 더해, 보복으로 인한 피해라는 '현재의 고통'을 증명하는 것이 A씨에게 남겨진 과제다.
